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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석 Nov 15. 2021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순간적인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는 초연한 사람 되기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한 자기 계발 서적의 제목이기도 하면서 인스타그램의 여러 명언 계정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메시지이다. 이 문구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명료하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기분과 감정을 마주하게 될 텐데, 이때 기분에 휩쓸리지 말고 일관성 있는 태도를 유지하라는 뜻이다. 낮은 성적을 받아 우울한 날에 엄마에게 화냈던 경험, 상사에게 크게 혼이 난 날에 여자 친구에게 차갑게 대했던 경험. 모두 이 문장에 해당된다. 그렇기에 이 문구를 실천할 수만 있다면, 더욱 평온한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 하지 않는가. 어쩌면 자기 계발로 분류되는 글이나 문장의 가장 큰 맹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따뜻한 말과 함께 건네는 삶에 대한 조언들은 독자들을 격려하고 자신감을 불어넣기에 충분하지만, 실제로 해당 조언을 현실에서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일반적인 메시지를 통해 방향성만 전달할 뿐, 어떤 길을 어떠한 방식으로 헤쳐나가야 하는지는 읽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둔다. 결국 메시지를 간직한 채 여러 상황을 맞닥뜨리면서 배우는 수밖에 없다.




필자도 기분에 휩쓸려 태도를 망치는 경험이 더러 있었기에 위 문구에 적극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를 적용하는 데 있어서 동일하게 어려움을 겪었다. 화가 나거나 우울한 상황이 오면 문구가 떠오르지만 거기서 그칠 뿐, 그것을 행동과 생각으로 전개시키지를 못한다. 어떻게 할지를 모르니까. 혼자 있을 때나 자기 전을 비롯하여 오랫동안 고민해보았지만 명확한 해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인스타그램의 어느 명언 계정에서 이런 문장을 보았다.

누군가 나에 대해 이유 없는 험담을 한다면, '내가 귀여워서 그런 건가 보다'하고 넘겨라


처음에는 저 말의 효과를 믿지 않았다. 사실이 아닌 줄 아는 말로 어떻게 스스로를 속일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던 나에게 어느 날, 이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상황이 생겨났다. 누군가가 나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게 되었고, 평소처럼 분노와 함께 억울함이 생겨났다. 상대방에 대한 화남과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억울함이다. 그러다가 문득 위 문장이 생각났다. 여전히 의심스러웠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느낌으로 스스로에게 저 말을 던져보았다.


효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 평소 같았으면 분노와 억울함으로 얼룩진 감정이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고 생각까지 퍼져 부정적인 태도를 가졌을 텐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가볍게 넘기고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진짜 스스로가 귀엽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감정을 진정시키고 덮어두기에는 충분한 합리화였다. 머리 한 구석에서는 여전히 신경 쓰였음에도, 큰 영향을 줄 정도가 아니라 넘길 수 있었다.




말장난 같은 사소한 말 한마디의 효과를 느낀 이후로, 나는 짧지만 확실한 한 마디를 여러 방면에서 시도해보기로 했다. 아래와 같은 나만의 문장을 만들어보았다.


일이 갑자기 많이 몰린 날 : "오늘따라 일이 많네? 오히려 좋아. 내 능력을 뽐낼 수 있겠네"


이유 없이 우울한 날 : "오늘따라 우울하네? 지금까지 너무 열심히 일해서 휴식이 필요한가 보다. 하루 일과만 버티고 푸욱 쉬어보자"


일을 완벽하게 하지 못한 날 : "메이플스토리도 슬라임부터 잡으라고 하는데... 나한테 너무 어려운 퀘스트 아니야? 열심히 단련해서 다시 찾아와야겠다"


정말 말장난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기를 적용하자고 결심하자, 기분에 휩쓸리지 않고 잔잔하고 일관성 있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일이 많은 날에도 평정심을 가지게 되고, 실수가 잦은 날에도 자책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효과가 정말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도대체 이 사소한 말 한마디가 어떻게 이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생각해낸 말들의 공통점을 분석하다가 두 가지 측면에서 결론을 내려보았다.


첫째, 無논리를 시전하자.

기분과 감정은 논리가 없다. 행복하다가도 출근길에 어깨빵을 당했다고 기분이 나빠지고, 우울하다가도 하늘이 예쁘면 다시 밝아진다. 변덕이 심하고 제멋대로 바뀌는 것. 이것이 감정이다. 이렇게 무논리로 무장한 감정에게 논리로 맞서려고 들면 패배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의미 없는 에너지만 소모할 뿐이다.

차라리 감정을 바보처럼 생각하고 대하는 것이 현명하다. 똑같이 논리가 없는 말로 장난치듯 대응하면 된다. 그러면 승패가 정해지는 싸움이 아니라 그저 장난에 불과한 조그마한 사건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때서야 우리는 감정보다 낮은 위치가 아닌, 같은 높이에서 서로 대등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받아치지 말고 받아들이자.

다른 사람을 놀림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는 상대의 리액션이다. 누군가를 놀렸을 때 상대방이 당황하거나 어쩔 줄 몰라하면, 당사자는 그것을 보고 재미를 느껴 더 놀리게 된다. 반대로, 화를 벌컥 내거나 무반응으로 일관하면 재미없다며 더 이상 놀리지 않게 된다.

감정과 우리 사이의 관계도 비슷하다. 감정은 우리를 놀리며 재미난 반응을 보고 싶어 한다. 감정의 놀림에 넘어가게 되면 감정은 우리를 계속 놀릴 것이고, 우리는 계속 거기에 놀아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무반응으로 대응한다면 어떨까? 받아치는 대신에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다면 감정은 어떻게 생각할까? 감정도 재미없다며 관심을 끌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감정의 놀림에 놀아나지 않고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다.




필자는 이 두 가지를 명심하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말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문장들을 매번 되뇌며, 기분과 태도를 하나가 아닌 전혀 다른 독립된 두 개의 관념으로 분리함과 동시에, 둘 사이의 대화를 싸움이 아닌 장난으로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이 사소해 보이는 것이야말로, 외부의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초연한 사람이 되기 위한 첫걸음이라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각자 기호에 맞게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말을 만들어낼 수 있다. 처음에는 우스워보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분을 다스리는데 얼마나 효과적인지 깨달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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