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시 기상으로 시작하는하루

by 우선열

젊은 시절처럼 오늘은 무슨 일이 있을까? 호기심이 넘쳐흐르는 것은 아니지만 평온한 하루를 예감하며 맞는 아침도 나쁘지 않다. 오랜 습관이던 다섯시 기상을 네시로 바꾸고 있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새벽의 고요를 좋아한다. 나이 들어 외로움은 상극이라지만 새벽의 고요는 세속에 물들지 않은 청정함이 있다. 아직 일과가 시작되기 전 나만의 시간, 오로지 내게 침잠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젊은 시절처럼 특별히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해야만 하는 당위성이 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야 한다던가? 네시 기상을 위해서는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건강 수면시간은 지켜져야 한다. 네시 기상이야 마음먹은 일이니 알람을 설정해 놓는다던가, 하는 물리적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가능하지만 일찍 잠드는 것은 여의치 않다. 알람 소리에 잠이 들 수 있는 나이는 아니지 않은가? 깜박 초저녁잠에서 깨어나면 좀체 잠을 이룰 수 없는 게 요즘의 수면 습관이다. 양지 녘 병아리 졸듯 초저녁잠은 뜬금없기도 하려니와 막을 수도 없는 일이다. 밀물 밀려오듯 순식간에 의식을 잠식하고 만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멀어지고 있다. 네시 기상이 힘든 이유이다. 눈을 뜨는 것이야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명료한 의식이 돌아 오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문제려니와 틈만 나면 달려드는 졸음도 문제이다. TV를 켜 놓고 깜빡깜빡 조시던 어머니는 TV를 끄고 방에 들어가 주무시기를 권하면

"안 잤다"

하시곤 했다. 꼭 그 모습 같다. 졸음이 와서 누우려면 잠은 어느새 저만치 달아나버리는 것이다. 입을 벌리고 자는지 가끔은 입안이 건조하다. 날벌레라도 들어와 뱃속에 기생하게 되는 건 아닌가? 입안은 아니지만 귀안으로 들어온 풍뎅이 때문에 황급히 응급실까지 다녀온 동생을 본 적이 있다. 풍뎅이는 그리 작은 날벌레도 아니련만 어찌 귓속에 들어갔을지 모를 일이다. 좁고 연약한 살인 귓속에서 풍뎅이의 몸부림은 또 얼마나 처절했을까 한참 장정이던 동생이 아픔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새벽 기상을 다섯시에서 네시로 바꾸려는 내 아침은 이렇게 요동치고 있다. 조금 더 견뎌 네시 기상을 생활화해보려는 마음과 다섯시 기상의 오래된 습관을 고수하려는 마음이 번갈아 오간다.

네시 기상에 살짝 다른 욕심이 들어 있기는 하다. 글 쓰는 시간을 조금 늘려 보고 싶은 것이다. 늦게 배운 도둑질 밤새는 줄 모른다더니 글쓰기 연습이 제법 재미지다. 술술 잘 써진다는 말은 아니다. 쉽기만 해서야 편안하기는 하겠지만 재미지기야 하겠는가? 첫 문장이 어디로 실종된 것만 같아 찾아 헤매야 하고 써 내려가다가 길을 잃고 방황하기도 한다. 끝이 어디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을 때도 있다. 쓰고 싶은 것은 있는데 글이 되어 나오지 않을 때의 막막함도 견뎌야 한다. 속이 후련하게 써 내려갔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을 때의 기막힘도 감당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견디고 쓴 글도 그리 변변치는 않다.

나를 버티게 하는 건 언젠가는 좋은 글 한편쯤 써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이다. 야구 선수가 홈런을 날리기 위해 백번 공을 치듯 열심히 쓰다 보면 마음에 드는 홈런 같은 글 하나 나오지 않을까. 행여 홈런을 날리지 못하면 또 어떠한가 무언가 몰 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비록 내가 홈런을 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내 모습을 보고 홈런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비록 내가 이루지 못했다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 또한 즐거운 일이다. 빛과 소금, 자체가 메인이 되지는 못하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것임을 안다. 감히 빛과 소금이 되려는 야심은 아니다. 다만 냇가에 놓인 징검다리를 받치는 작은 조약돌이라 하더라도 내 소임이라면 기꺼이 감당하려 한다. 안전한 징검다리가 되기 위해서는 큰돌을 받쳐주는 조약돌이 있어야 튼튼해진다. 꿈과 야망이 큰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네시 기상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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