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이름으로 46

63년생 조태숙2, 긴 병에 효자 없다더니

by 우선열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저녁, 뜻하지 않게 그녀의 방문을 받았다

젖은 우산을 접는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

그녀를 끌어안다시피 소파에 앉히고 따뜻한 꿀물을 먹이자

그녀의 표정에 안도의 기운이 퍼졌다

"언니가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되긴 했어요

그래도 도저히 혼자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

도경이 만나고 오는 길이에요

할머니가 워낙 좋으신 분이라 아이들 걱정은 안 하지만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어서요

엄마 스테이크 먹고 싶어 하길래

주머니 톡톡 털어 스테이크 사 먹이고 잠실에서 걸어왔어요"

담담히 그녀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유명 대학의 캠퍼스 CC로 이름을 날리고 평탄하게 결혼으로 이어져

그들 부부는 모든 친구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큰 키의 훤칠한 신랑이 작고 다부진 그녀 옆에서 온갖 시중을 들어주면

친구들의 부러움은 극에 달했다.

자상하고 유머 있고 똑똑하고 잘생긴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 했던 가난한 친정이

전혀 주눅이 들지 않도록 배려를 잘해주는 인품 있는 집안이기도 했다.

유명 일간지 신문기자로 취업한 그녀의 영특함을 보시고

그녀의 직장생활을 적극 후원해주시는 시부모님들의 사랑도 극진했으며

남편 또한 승승장구 탄탄한 사회생활의 기반이 다져졌다.

도경이를 낳은 기쁨도 잠시 남편이 과로로 쓰러졌다

청천벽력이었다


집안에 가족력이 있긴 했지만 잘 관리하여 건강하신 아버님을 뵈었기 때문에

남편의 건강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누구보다 건강해 보였으며 활기찬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다.

응급실로 중환자실로 뛰어다니며 직장도 그만두고

그녀는 남편의 간호에 집중했지만 쉬이 나을 수 있는 병은 아니었다 .

7년이라는 세월을 누어서 사는 남편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주변 사람들이 지쳐 갔다.

무한정 들어가는 병원비도 문제였다.

처음엔 당연히 시부모님 몫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태숙씨는 눈치가 보였다


병원비야 그렇다 하더라도 생활비를 타야 할 때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처음엔 당연하게 미리미리 통장에 들어오던 생활비가

어느 날부터인가 명목을 따지기 시작했다.

사람 살아가는데 어찌 꼭 필요한 돈만 있겠는가

흐지부지 쓰인 돈의 출처를 들출 때마다 태순 씨는 초라해졌다.
시어머니의

"젊은 것이 언제까지 이리 살거니? 앞길이 구만 리인데"

할 때마다 자신이 기생충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남편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는 것도 점점 힘이 들었다.

태숙 씨의 헌신보다 시집의 돈이 남편을 지탱하는 힘인 것이다.

"어머니, 저 직장을 가져야겠어요"

했더니 시어머니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애들 걱정은 말아라

앞길이 구만리 같은 너 살 궁리는 해야지"

그제서야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살아갈 터전을 마련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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