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해' 이건 종종 내가 나한테 하는 말이다. 새벽 4시 기상이 힘들 때나 운동화 끈 매기가 어려울 때 "그냥 해" 한마디 하고 나면 무겁던 몸이 그냥 움직여진다. 다섯 시 기상을 네시로 바꾸고 나서 아직 적응이 덜 된 것 같기도 하다. 알람을 끄고도 잠자리에서 뭉그적거리며 2~30분을 보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네시 기상이 무리인가? 그냥 다섯 시 기상으로 할까? 혼자 생각해 보기도 한다. 솔직히 다섯 시 기상시간이었을 때도 일어나기 싫었던 적이 많다. 잠자리에서 뒤척이다가 2~30분이 지나고 나서야 마지못해 일어나곤 했는데 네시 기상이 안 지켜지면 '몸에 무리가 가는 건 아닐까'? 혹은 여름엔 네시 기상도 괜찮지만 겨울 네시 기상은 무리야, 너무 어둡잖아, ' 하는 핑계를 대고 있다. 오랜 습관이던 다섯 시 기상을 네시로 바꾼 건 지난겨울부터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네시에 올리는 이웃 '행복한 루치아'님의 수필을 빨리 읽고 싶은 것이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재미 중 하나가 이웃들을 방문하고 포스트를 읽는 것이지만 하루 한 편씩 좋은 수필을 선정하여 올리는 행복한 루치아 님의 포스트를 읽는 시간을 특히 좋아한다. 내게는 책 한 권을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고 마는 습성이 있어 수필 읽기를 좋아하지만 아침에 책을 잡으면 하루 종일 다른 일은 거의 못하고 만다. 때로는 시간에 쫓겨 대충 읽기고 하고 어떤 때는 졸면서 책장만 넘기기도 하면서도 한번 잡은 책은 다 읽어야 마음이 놓인다. 책 한 권을 다 읽었다는 뿌듯함은 있지만 한 권을 다 읽었는데도 무얼 읽었는지 모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책이 부족하던 시절에 생긴 버릇인데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고치고 싶지 않은 욕심이기도 하다. 루치아 님을 방문하면 한 편의 수필을 천천히 음미하며 읽게 되니 수필집을 손에 들고 욕심껏 여러 편을 한꺼번에 읽을 때와는 다른 깊이를 느낀다. 기상시간을 루치아 님의 포스트가 올라오는 네시로 바꾼 이유이다. 남보다 먼저 행복한 아침을 여는 비법이기도 하다 가끔은 '그냥 해' 하며 억지로 몸을 일으키지만 이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일찍 일어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해'의 마법 때문이다. 운동화 끈 매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특별히 내향적이라던가가 움직이기 싫어하는 성향은 아니지만 운동화 끈 매기가 힘들어지는 날 "그냥 해" 말하고 나면 힘들게라도 몸을 일으키게 된다. 운동화 끈만 무사히 매고 나면 운동하는 걸 싫어하지는 않는다. 땀이 약간 흐를 정도로 몸을 움직이고 나면 몸이 가벼워지는 듯한 상쾌함을 맛보게 된다. '그냥 해' 하지 않았다면 맛보지 못할 즐거움이다. '그냥 해'가 내게는 마법의 주문이 되어버린 것 같다. 설거지를 미루고 싶을 때나 청소가 귀찮아질 때도 써먹어 봐야겠다 '그냥 해' 다른 이유가 필요하지 않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