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탄천 산책길

by 우선열


나는 익숙한 곳이 좋다. 동네 산책을 나갈 때도 거의 익숙한 길을 택하는 편이다. 치매 예방에 낯선 길을 걷는 게 좋다는 말에 샐쭉하다가 칸트가 평생 같은 산책길을 오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흐뭇해한다. 칸트처럼 늘 같은 시간에 일정한 산책 코스를 도는 건 아니지만 작정하고 다른 산책길을 돌아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탄천 길을 향한다. 탄천 길에서도 성남방향이냐 양재천 방향이냐를 정할 때 90% 이상 성남방향을 택한다. 양재천 방향으로 가면 한강을 볼 수 있다는 그럴듯한 유혹을 제치고 익숙한 곳을 향한다. 낯 선 곳의 긴장감이 싫은 것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보다 익숙한 곳이 주는 편안함 때문인데 이건 일종의 게으름 때문인 것도 같다. 신경 쓰기 싫은 것이다. 어쨌거나 동네에 대모산과 수서 공원, 몇 군데 좋은 주변 산책로가 있건만 내가 자주 찾는 곳은 성남방향 탄천 길이다. 이맘때 탄천 길에는 찔레꽃이 한창일 것이다 나름 쌓인 이런 경험치가 탄천을 향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겨우내 나목이 반기던 탄천 길에 봄까치가 피기 시작하면 탄천은 하루하루가 다르다. 개나리가 피고 벚꽃 세상이 되었다가 명사화와 조팝나무 꽃이 피고 진다 아카시아가 필 무렵이면 붓꽃과 수련을 보아야 한다 그때쯤이면 이팝나무 꽃도 한창이다. 지금은 작약을 볼 때건만 지난해에 우리를 반겨주던 작약꽃은 탄천 정비 길에 밀렸나 보다. 작약을 보리라 작정했던 산책길에 서운함만 가득했다 아직 서운함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 찔레꽃 소식에 마음이 급해진다. 조만간 찔레꽃이 지기 전에 탄천 나들이를 하게 될 것이다. 나는 2~30분 가벼운 산책보다는 두세 시간 좀 버거울 때까지 걷는 산책을 좋아한다. 운동화 끈 매기가 어렵지 일단 나서기만 하면 돌아올 걱정은 하지 않는다. 지칠 때까지 걷지만 돌아오는 길이 힘들지는 않다. 돌아오는 길은 귀소 본능이다 나는 본능에 충실한 성향이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 다이어트를 해야 하고 잠자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 일은 힘이 든다. 산해진미 보다 배고플 때 먹는 빵 한 조각이 좋고 지하철에 흔들리며 쪽잠을 자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산책을 나갈 때 설레는 마음도 좋지만 돌아올 때의 안도감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이건 경험을 통해 배운 지혜일 수도 있다 일탈을 꿈꾸던 젊은 날을 지나 일상이 주는 행복함을 깨우친 것이다 피고 지는 꽃들에 익숙해진 탄천 산책길 인생에 익숙해진 나이 듦이 나쁘지만은 않다 삶이 그리 기쁜 것만도 슬픈 것만도 아니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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