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생 조태숙 4,
교육 프로그램이 짜져 있는 교육장의 교육시스템과는 많이 달랐다.
기존 직원들의 일하는 모습을 보며 실무를 익히는 실전 교육이었다.
칸막이가 된 작은 부스 한 칸이 태숙씨에게 배정되었다.
전쟁 같은 영업이라는 말이 실감되었다.
7~80 명이 각자 자기 부스에 앉아 전화작업을 하고 있었다.
겨우 몸하나 들어갈 수 있는 중등학교 독서실 의자 같았지만
저마다 큰 목소리를 내며 전화를 하고 있었다.
여러 사람이 언성을 높인 전화 목소리에 태숙씨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디에 집중을 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같이 교육을 받은 교육생들은 각자 부서가 배치되어 뿔뿔이 흩어져
가까이에는 말 붙일 사람이 없었다.
엉거주춤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데 부서장의 호출이 있었다.
간단히 부서원들에게 태숙씨를 인사시키고
서너 명 새로 입사한지 며칠 안되는 직원들을 소개했다.
같이 실무를 익혀야 할 주부사원들이었다.
태숙 씨에게는 두 사람이 눈에 들었다.
까만 피부에 덜 갖춰진 매무새지만 열정과 각오가 가득 넘쳐나는 경아 씨와
영업 세계를 낯설어 하지만 웬만한 사회경력이 있어 보이는 필구 씨였다.
간단한 영업실무에 대한 설명과 영업 수칙이 적힌 책자를 나누어 주며
일단은 기존 직원들을 지켜보며 실무를 익히라는 부서장의 지시였다.
경아 씨는 초조한 모습으로 영업수칙이 적힌 책들을 읽어 보기도 하고
기존 직원들의 일하는 모습을 주의 깊게 살피기도 했다..
필구 씨는 조용하지만 분위기를 익히려는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부서장들이 직원들 책상 사이를 돌며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가끔 영업장에서 큰소리가 나거나 울며 뛰쳐나가는 직원도 있었다.
얼굴을 볼 수 없는 전화영업이니 종종 고객으로부터 인격 모욕을 받는 일이 있어
의기소침해지고 일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니
부서장들은 그들을 격려하고 의욕을 북돋아주는 역할이 중요한 듯했다.
하루에 서너 명씩 자리가 비기도 하고 채워지기도 했다.
아무나 시작할 수 있지만 누구나 성공할 수는 없다던 교육 강사의 말이 실감되었다.
말로 사람을 설득하는 일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으니
전화영업이 그리 어려우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눈으로 보지 않고 상품을 팔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듯했다.
전화응대 매뉴얼이 있어 고객들이 흔히 하는 질문에 대한 모법답안도 작성되어 있었다.
부서장은 처음 전화시 고객들로부터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 쉽지 않으니
전화응대 매뉴얼을 달달 외워 무의식중에 튀어나올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당장 호구지책을 해결해야 하는 태숙씨는 마음이 급했다.
빈손으로 출발해도 영업 목표만 뚜렷하면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으며
안정된 직위를 보장받을 수 있다 하니
지금의 태숙씨로서는 눈앞에 내려진 동아줄 같았지만
처음 보는 동아줄을 덥석 잡을 수만은 없었다.
잡고 올라갈 수 있는 튼튼한 동아줄인지 알아야 했고
무엇보다 태숙씨가 오를 수 있는 능력이 있을지도 의심스러웠다.
10여 년을 집안에서 칩거하며 살았으니 자신만이 낙오된 듯한 열등감이 태숙씨를 괴롭혔다.
세상이 내 것 같던 젊은 날의 근거 없는 치기가 부러웠다.
날개 잃은 새처럼 오갈 데 없는 자신의 처지를 똑바로 직시해야 했다.
바늘허리 매어 쓸 수는 없는 법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조상들의 지혜를 떠올렸다.
누구의 추천이나 권유 없이 일간지 광고만으로 찾은 일자리이니
일에 대한 확신이 들 때까지 얼마간 지켜보자는 생각을 하니
태숙씨만 낙오자인듯한 초조감이 조금 누그러졌다.
비로소 사무실 안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출퇴근과 조석회 전체 교육이 있었지만 영업활동은 부서별로 특색이 있어 보였다.
선배 직원 중 특출한 성과를 이룬 직원들이 하는 경험담은
태숙씨에게는 어떤 이론 교육보다 힘이 되었다.
대부분 경력단절이 되었던 주부사원들이 영업에서 이룬 성과들이어서
태숙씨도 도전해 볼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