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생 조태숙6, 부자 되세요
은혜 씨는 태숙 씨보다 10여 년쯤 연배였다
'저 나이까지 일을 해야 하나' 심란한 마음이기도 했는데
영업계에서는 전설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목표로 한 고객에게는 어떻게든 계약을 성공시킨다는 성공신화를 몰고 다녔지만
직원들 간에는 얼음공주였다
신임 사원들은 사람 취급도 안 한다는 루머를 몰고 다녔다
냉소적인 그녀의 경험담은 단순했다
"다른 말 필요 없어요,
'나도 샀어' 한마디면 웬만한 고객들은 꺾이던데요"
연고 영업 위주인 그녀는 자신에 대한 신뢰를 영업 원칙으로 삼는 듯했다
영업은 상품이 아니라 자신을 파는 일이라던 교육 강사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제법 많은 월수입을 올릴 수 있는 작은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나이 학력 경력 성별 따위는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누가 얼마나 실적을 올리느냐가 모든 판단의 기준이었다
공공연히 '실적이 인격'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세상의 끝에 내동댕이쳐진 듯한 자괴감과 동시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경단녀 딱지를 떼낼 수 있을 거 같았다.
계급장 떼고 한판 붙어보자는 오기도 생겼다
은혜 씨 옆에 녹음기를 대고 서 있는 경아 씨가 눈에 들어왔다
시골에서 갓 상경한 듯 촌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또렷한 이목구비가 있어
조금만 다듬으면 뛰어난 미모일듯한데
버짐이 필듯한 건조한 피부에 입 가장자리는 헐어 있어 초라해 보였다
반짝이는 눈은 영리하게 빛나고 있어 그녀의 야심이 드러나는 듯하다
세윤 씨와 은혜 씨 근처를 서성이며 한마디라도 붙여 보려는 노력이 눈물겨웠다
모두 퇴근한 후에도 회사에 남아 부장의 잔무 처리를 돕는다는 소문이다
업무시간 중에도 통화 메뉴얼을 큰소리로 읽고 서 있는 경아 씨를 몇 번 보았다
부장은 그런 경아 씨를 흐뭇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여보세요, 사모님 안녕하세요"
솔음의 명랑한 경아 씨 목소리가 들리는듯하더니 이내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어떻게 하면 전화를 안 끊게 할 수 있을까 경아 씨의 혼잣말이 들렸다
태숙씨가 거절당한 듯한 참담함이 몰려왔다
"영업은 거절에서 시작됩니다" 하던 교육 강사의 말이 떠올랐다
"부자 되세요, 이경아입니다"
금방 마음을 추스르고 언제 거절당했냐는 듯
대세 여배우의 유행어를 따라 하는 경아 씨를 보며
그녀의 눈물겨운 노력을 보는듯해서 웃을 수만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의 고객에게 무조건 통화를 시도해야 한다
고객들의 입장도 마찬가지일 듯했다
모르는 사람이 건 전화에 쉽게 속을 내 보일 수는 없을 듯했다
"관심 없어요 " 고객들의 반응이 당연할 듯했다
필구 씨는 조용했다
가끔 안하무인식의 텃세에 눈살을 찌쁘리기는 하지만 동요는 없었다
몸에 밴 남을 배려하는 자세 때문에 신입사원 간에 신뢰를 얻기는 했지만
낯설고 험한 영업 세계가 힘겨워 보였다
어떻게든 자리를 잡고 싶어 하는 모습이 보여 안쓰러웠다
경아 씨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듯했지만
필구 씨는 몸에 맞지 않은 옷처럼 겉도는 느낌이었는데
전화 목소리는 뜻밖에 안정적이었다
낮은 음색이었지만 마치 아나운서의 멘트처럼 안정된 톤이었다
주변을 서성이던 부장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돌아섰다
경아 씨처럼 들어 내놓고 노력하는 듯 보이지는 않았지만
전화 대화에 저만큼 안정된 톤을 유지하려면 나름의 노하우가 있을듯했다
경아씨처럼 겉으로 들어 내놓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적응해 보려고 절치부심 노력을 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