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 좀 살려 줘~'
환절기 옷장 정리 시즌이 되면 터져 나오려는 아우성이다.
요즘엔 날씨마저 변덕스러워 옷장 정리가 더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날씨에 맞춰 계절에 맞춰 갖춰 입는 센스를 발휘하는 편도 아니다.
편한 옷을 주로 찾는 실용주의에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그 옷만 줄곧 입어대는 귀차니스트기도 하다.
'때와 장소에 맞게 '를 외치지만 때와 장소라는 게 실용주의 귀차니스트와 만나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만다.
외출이 없는 날에는 하루 종일 잠옷으로 버티기도 하고
가벼운 일상복으로 웬만한 산책이나 등산도 즐기는 편이다.
정장을 갖춰 입어야 할 경우에도 균형 속의 파격이라며 적당히 색깔로 톤 다운을 한다던가
겉옷으로 캐주얼한 속옷을 감추어 버리는 편의주의자이다 .
한 계절에 옷 두어 벌만 있어도 충분히 편하게 입으면서도
막상 옷을 구입할 때는 때와 장소에 맞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등산복이 필요하고 가까운 산책길에 입는 운동복도 있어야 하며
가벼운 외출 시에는 무난한 평상복, 격식을 갖춰야 할 때는 품위 있는 정장 한 벌쯤 있어야 할 것 같다.
4계절이니 4계절 모두 TPO에 맞는 옷차림을 장만해야 한다.
간절기를 버티려면 간절기 옷도 필수이다
자주 빨아 입어야 하는 옷은 여러 벌 장만해야 하고
격식을 갖춰 입는 옷도 늘 같은 옷만 입을 수 없으니 분위기에 맞는 옷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옷장 안은 늘 복잡하고 어지럽다
색깔 따라 옷감 따라 디자인 따라 계절에 맞는 옷이 있어야 할 것만 같다
실용주의 귀차니스트이니 한 번도 입지 않는 갖추기 옷이 쌓여 간다.
입지 않는 옷을 얼른 처분하여 깔끔하게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한다.
특히 요즘 같은 환절기에는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철 지난 옷을 들여놓고 새 계절에 맞는 옷을 꺼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우리 속담에 방귀가 잦으면 똥 싼다지 않는가?
환절기마다 옷 정리를 하려고 전전긍긍하기는 한다
날이 궂어서, 날이 좋아서, 날이 그냥 그래서 옷 정리를 하려고 옷장 안의 옷을 꺼내 놓는다
'3년 이상 안 입은 옷 순서대로 정리하자'
나름 기준도 세워보지만 쌓인 옷더미 앞에 서면 기준이 모호해진다.
옷마다 사연이 있고 핑계가 있다
조카딸 결혼식에 입은 정장, 친구와 같이 마련한 홈웨어, 언니가 사준 블라우스,
디자인이 다른 청바지, 색도 다르고 모처럼 장만한 뚫어진 청바지도 있다.
지금 처분해 버리면 언제 필요할지 알 수 없다.
색도 다르고 디자인도 다르고 재질도 어느 걸 처분해야 할지 아리송해진다
다시 하나씩 옷장 안으로 들어간다
'새 옷을 살 때마다 하나씩 처분하자'그렇게 정해보기도 했다
제철 옷이라 하더라도 각기 다른 법이니 집에 있는 옷과는 뭔가 달라도 다르다
처분하기 애매해진다, 다시 옷장 안으로 들어가고 만다
세월 따라 옷은 쌓여가지만
막상 입으려면 마땅한 입을 거리는 없다
산처럼 쌓인 옷더미 속에서 "옷이 없네" 하고 만다
나이가 드니 옷 뿐만 아니라 주변 정리를 해야 할 때라고들 한다.
옷,사진이나 집기, 책, 취미용품 등을 미리 미리 정리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긴 내가 쓰던 물건을 내가 정리하고 싶기는 하다
내가 쓰던 물건이 한꺼번에 쓰레기 처리될 것을 생각하면 내 손으로 처분하는 것이 나을 듯도 한데
이론과 현실에는 차이가 있다
사는 동안에는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미리 정리해 주고 죽을 날만 기다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정리해야 한다', '살 수 있을 때까지는 누리고 살아야 한다'
둘 다 옳은 말이다
옷장 속에서 필요한 옷가지와 버려야 할 옷가지를 골라야 하는 것처럼 난해하다
이번에도 옷을 다 내놓았다가 하나씩 다시 갈무리해 놓고 만다
옷장 안은 복잡하고 터질 듯하다
'누가 나 좀 살려줘' 환절기에는 소리치고 싶다
인생의 환절기도 마찬가지이다.
하고 싶을 일을 할 수 있을지 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해보기나 했어?" 정주영 님의 말씀이 맞다
환절기 운운하며 오락가락할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해봐야 한다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두 번 살 수도 없는 인생이다
살려고 태어난 것이지 정리하려고 태어난 것은 아니다
환절기 날씨도 인생도 예측 불가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