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생 조태숙 9
태숙 씨도 경아 씨도 필구 씨도 무사히 영업 세계에 안착한 듯했다.
하늘 같아 보이던 선배들의 장단점이 보이고 무엇보다 직속상관인 부장이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에 눈을 뜨게 되었다.
신입시절 부장은 엄마 같았다.
신생아를 키우는 엄마처럼 신입사원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살펴 주 공공연히 부장을 엄마라 호칭하기도 했었다.
사춘기처럼 어느 정도 회사의 사정에 눈을 뜨자 부서별 특징이 눈에 들어왔다.
부서장의 능력에 따라 부서의 활약상이 크게 차이가 나는 듯했다.
태숙씨의 부장은 온화한 인품을 갖춰 초보 시절 안정을 찾기에는 더 없는 길잡이가 되어 주었지만
게약을 이끌어 내는 노하우는 부족한 듯했다
젊은 윤 부장 부서에는 신입직원의 정착이 어려웠지만 은혜 씨와 세윤 씨를 비롯한 기라성 같은 슈퍼 직원들이 있어 연일 계약이 터지는 잔칫집 같았다.
호된 교육과정이 있어서인지 신입 직원들이 울며 뛰쳐나가는 광경이 종종 눈에 띄었다
처음엔 저승사자처럼 무서워 보이더니 익숙해지니 좀 부딪치더라도 실적을 올릴 수 있다면 감수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필구씨는 아무리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인격 모독은 받고 싶지 않다며 윤 부장을 싫어했지만 경아 씨는 눈에 띌 만큼 윤 부장을 가까이했다.
태숙씨도 윤 부장의 노하우가 궁금했지만 어쩐지 담당 부장의 눈치가 보였다
걸음마부터 가르쳐 준 부장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에 충실한 경아 씨가 겁없이 부서 이동을 신청했다
보아서는 안되는 것을 보아버린 당혹감이 업장을 휩쓸었다
업장의 미묘한 기류에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폭풍전야 같은 긴장감에 놓여야 했다
영업조직에서는 불문율이 있었다
조직이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한 부서의 인사권과 경영권은 담당 부장에게 속하는 권한이었다
부서 이동은 이런 기본 원칙을 깬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행동이었다
경아 씨는 물론 우리 모두 숨죽이고 담당 부장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필구씨가 조용히 담당 부장을 달랬다
"부장님 덕분에 경아 씨도 우리도 모두 자리 잡을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경아 씨도 늘 고맙다고 이야기하고요, 경아 씨만큼 부장님 보필 잘하는 사람도 없잖아요
단지 다른 걸 배우고 싶은 욕심 때문이지 부장님을 싫어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
"아, 예 알고 있습니다, 경아 씨가 일 욕심이 많지요 회사로서는 좋은 일입니다
절차상의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뭐 잘 해결될 겁니다 마음 쓰지 마세요"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는 말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부장의 표정이 생각보다 밝아 조금은 안심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경아 씨가 노심초사였다
일을 배우고 싶다는 게 뭐가 잘못이냐고 항변하다가 조직의 불문율이라는 말에 기가 죽은 듯했다
그동안 수없이 말없이 사라지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아왔던 터였다
눈치 빠르고 이악스러운 경아 씨는 재빨리 사태를 파악했고 자신의 거취를 결정하기 위한 행보를 시작한듯했다
주변의 변화에 관심이 없는 태숙씨도 같이 입사한 경아 씨 인지라 마음이 쓰이기는 했는데 필구 씨는 경아 씨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를 하고 있었다
폭풍전야 같은 긴장감이 흐르고 다시 출근한 다음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기운이 업장에 넘쳐났다
일찍 출근한 경아 씨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반갑게 아침인사를 했고 늘 온화한 표정이던 부장의 모습에 활기가 더해져 명랑한 모습이었다.
전체 조회를 시작하기 전 부서 조회 때 사장이 우리 부서원 전부를 사장실로 불렀다
"축하합니다
여러분이 잘 해주신 덕분에 최 부장이 이사 승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부서로의 이동이 당분간 낯설기는 하겠지만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최 부장이 물심양면으로 도울 겁니다
당분간 부서장 두 명의 보살펴 줄 테니 여러분도 행운입니다
직원분들의 희망을 우선으로 부서 배치를 할 테니 가고 싶은 부서가 있으면 기탄없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태숙씨와 경아 씨는 자연스레 윤 부장을 선택했고 필구씨는 최 부장의 권유로 이 부장 부서로 편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