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이름으로 59

조태숙 14

by 우선열

우리 집에 들르는 횟수는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박상영은 종종 우리 동네에 나타나곤 했다

하회탈 같은 미소를 띤 얼굴로 동네 곳곳을 헤집고 다녀

동네 상가에서는 어느새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으며

내 아들과 태숙 씨의 아들은 삼촌과 노는 날을 제일 좋아하게 되었다


두 가족과 박상영이 온양 한옥마을로 주말여행을 다녀온 뒤부터인 듯하다

조태숙의 변화가 뚜렷해졌다

중무장된듯한 결기 어린 표정이 부드러워졌으며

무엇보다 내게 폭탄선언을 했다

일중독처럼 잠시도 일손을 놓지 않던 그녀가 휴식을 선포한 것이다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 회사들에게 단호한 거절을 하며

조태숙을 따르던 직원들에게도 자신의 거취가 확실해질 때까지

다른 영업조직을 찾아볼 것을 간곡하게 권유해 왔다

박상영의 영향이 있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나도 남편의 새 사업을 도와야 할 일이 생겨 영업 계를 떠나게 되고

조태숙도 이사를 하여 우리들의 관계는 자연스레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가끔 전화선 너머로 그녀의 유쾌한 웃음소리를 듣기도 했고

가평에 황토 찜질방이 있는 전원주택을 마련하였으니 놀러 오라는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그즈음이었다

조태숙의 오빠가 나를 찾아와

대뜸 힘들게 사는 여동생에게 그런 날건달을 소개해 고생시킨다면 거친 항의를 했다


조태숙이 가까스로 마련한 집까지 팔아 박상영의 뒷바라지를 해주고 있으며

시골에서 막노동 일을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명랑한 웃음소리를 들었던 나로서는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는데

아이들까지 시집으로 보냈다는 말에 충격이 커졌다

한참 예민한 사춘기였다

남편과 나는 부랴부랴 조태숙을 찾았다

황토 흙이 펄펄 날리는 건설현장이었다

야구모자를 눌러쓴 그녀가 분주하게 오가며 지휘를 하고 있었다

하얀 이가 드러날 정도로 까매진 얼굴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마치 현장을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자신 있는 태도를 취하지만 어딘가 비어있는 듯해 보였던 영업장에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넓은 들판을 뛰는 거친 야생마 같았다

차분하고 논리적이던 말투도 서글서글하게 바뀌어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듯했다


"우리 오빠, 마마보이 외아들이잖아요, 공부는 잘했지만 사회에 적응을 못하네요

엄마 그늘에서 살다가 이젠 내게 기대요. 그냥 두고 보세요. 할머니가 애들 보고 싶대서 보냈어요

'애들도 좋아하고 주말이면 여기 와서 같이 지내고 있어요.

집이야 팔았지만 짓고 있는 집이 이렇게 많은데 무슨 걱정이겠어요

현재 오빠한테는 전처럼 많은 지원은 못해주고 있지만 분양 시작하면 곧 해결될 거예요

예약 분도 있으니 준공만 떨어지면 수익은 보장이 되어 있어요"


전혀 다른 모습이었지만 대장다운 면모가 돋보이는 모습이었다

덩치 큰 박상영은 옆에서 그를 도와주는 집사처럼 충직한 모습이었다

거칠 거 없어 보이던 박상영이 하나하나 그녀의 지시를 받고 있었다

"일 저지르는데 선수입니다 뒤처리하는 것만으로 하루 해가 가네요

그런 추진력이 있어 사업이 복구됩니다

현장을 보여주자마자 자금 마련을 한다며 말릴 틈도 없이 집부터 내놓더라고요

덕분에 자금 부족으로 짓다만 전원주택단지가 완성되어 가고 있고

입지 좋고 잘 지은 집이라 100% 분양됩니다"

예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박상영이 뒷말을 이었다

"황토 찜질방이 있는 건강한 집이니 언제든 놀러 오세요"

세간에 있을 수 있는 의혹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소화하며

그녀는 밝고 건강한 모습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