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이름으로 69

부동산 영업 사원 2

by 우선열
영업은 조회로 시작된다

그렇게 그녀는 부동산 영업을 시작하였다

그녀의 부서는 영업 2부였다

40대 초반인 최 부장과 일곱 명의 부서원이 있고 부서에 한자리가 비어 있다

베테랑이라는 서 차장은 아침 회의 시간에만 출석했을 뿐 자리를 비우는 일이 많고

나머지 직원들은 자리에 앉아 하루 종일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 있다

아침은 조회로 시작된다

10시가 정해진 출근 시간이었지만 부서 조회는 출근시간 전이다

9시 30분에 부서별 조회가 있으니 그전에 출근해서 근무 준비를 해야 한다

자신의 책상을 닦는다거나 자료 준비를 하고 마실 물을 준비하기도 하며

당번을 정해 부장의 책상을 정리해 주거나 차를 준비하기도 한다

눈치 빠른 정 과장은 당번이 아니더라도

부장의 책상을 닦는다거나차를 준비하는 둥 약삭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부서 회의는 아침과 저녁, 점심 식사 후 하루 세 번은 기본이었고 수시로 부장이 긴급회의를 주도하기도 한다

부동산 소식이라던가, 매출에 관한 이야기, 부서의 매출 정도, 출퇴근 시간 지키기, 같은 이야기였지만

매출이 부진할 때는 살벌한 분위기를 만들어 계약을 종용하기도 한다

실적이 없으면 자리를 지키고 있지 못할 만큼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으니 제풀에 겨워 퇴사를 하기도 하는데

퇴사하는 사람의 십중팔구는 회사의 권유이기도 하다

적응을 하지 못하는 직원은 오래 두지 않는다

수당만 지급하는 경우에는 회사에서 퇴사를 종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기본급을 주는 부동산 회사에서는 계약이 나올 때까지 오래 두지 않는다

살아남으려면 본인 계약이라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수당만 지급하는 회사와 다를 바 없다

오히려 목돈 내고 푼돈 받아 가는 격이 될 수도 있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이다

부장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책상을 두드리는가 하면

자주 회의를 소집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개인 면담을 통해 계약을 유도하기도 한다

부서장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때 개인 면담을 하게 되면 울며 자리를 뛰쳐나가는 직원들도 있다

6부의 경우는 특히 큰소리가 잦다

부장은 긴 지시봉을 들고 다니면 책상 옆구리를 탁탁 치기도 하니

마치 학창 시절 훈육 선생님을 보는 듯하다


6부는 실적이 좋으니 분위기가 좋은 날도 많다

잔금이 들어올 때마다 떡 잔치가 벌어지기도 하고 직원들 생일에는 생일 케이크를 나누어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수당을 탄 직원은 부서원들에게 복돈을 돌리고 있다

만 원권을 네모로 작게 접어 안 보이게 손에 쥐여 주는 돈을 복돈이라 한다

" 6부는 거의 매일 복돈 탈걸요

나도 복돈 조금 모아 놓았어요, 공돈인데도 아까워서 못쓰겠더라고요

복돈을 들고 있어야 계약을 빨리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열자 모으기 전까지 첫 계약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입사 한 달 안에 계약 나오는 사람들이 많대요

아이스 블랙을 하면 회사에서 따로 시상금을 주기도 해요"

돈 이야기를 하면 정차장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른다

돈에 대한 그녀의 열망을 보는 듯하다


부서별 조회가 끝나면 10시에 전체 조회가 시작된다

회장, 사장, 전무나 상무 같은 임원들이 전체 조회를 주도하며

부동산에 관한 시사 이야기 중에서도 현재 팔고 있는 지역의 이슈들을 이야기하거나

부동산 직원의 성공담들이 많다

때로는 직원의 사기를 돕기 위해 여흥을 벌리기도 하는데

일찍 출근한 직원에게 특별 시상을 하는가 하면 베스트 드레서를 뽑기도 하고 열정 사원 투표도 있다

"언니 대답만 잘해도 돈 봉투가 나와요, 체면 차릴 거 없어요 내가 안 타면 다른 사람이 타니까요,

신입 직원들에게는 조금 관대하기도 하거든요, 공돈인데 받아야지요"

정차장이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시상이 있을 때 가장 적극적인 사람이 정차장이긴 하다

아침 일찍 부장의 책상을 닦아 놓고 은근히 시상이라는 명목을 대면

사람 좋은 최 부장은 기꺼이 만 원권을 내놓기도 했다

치졸하고 불편할 것 같지만 이 방법은 부서원들의 사기를 높이는 직접적인 방법이 되기도 한다

돈 앞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적나라한 이런 장면들도 그녀에게는 부자연스러웠지만 가장 힘든 건 구호였다

박수를 치기도 하고 주먹을 쥐기도 하고 손을 번쩍 들기도 하는 제스처를 갖춘 구호가 부서별로 있는가 하면

전체 구호도 따로 있었다

부서별 조회시간에 구호를 하고 전체 조회시간 끝나고 다시 전체 구호와 부서 구호를 해야 한다

구호는 적당한 리듬을 타기는 했지만 내용은 적나라하고 원초적이었다

'팔자 팔자 땅 땅, 벌자 벌자 돈 돈', 이런 것도 있고 '계약만이 살 길이다' 같은 협박성 멘트도 있었다

처음 들을 때는 얼굴이 붉어져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신입생의 경우는 목소리를 높이는 교육이 우선이었으니

부서 직원이 쳐다보는 앞에서 혼자 구호를 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도저히 못할 거 같았지만 시범을 보이는 부장 앞에서 못하겠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가장 어려운 관문 중의 하나가 구호였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녀는 구호가 낯설다

다행히 요즘엔 구호를 심하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알게 모르게 구호에 익숙해졌을 수도 있다


부동산 신입 교육

"부동산은 교육 사업이에요, 잘 들으셔야 합니다"

교육을 시작하기 전에 최 부장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그만큼 교육이 많기도 하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일은 언제 하나' 의심이 생길 정도로 하루 종일 교육에 시달리기도 했다

신입사원 교육, 물건 교육, 마인드 교육, 부서장 교육, 임원 교육, 성공사례 교육,

부동산 교육, 텔레마케팅 기법, 영업사원의 자세 등

이름을 달리하기는 했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땅을 파는 게 목적이었다

처음엔 부동산 교육으로 시작했다

주로 땅값이 많이 오른 곳의 사례 교육이었다

땅만 잘 사면 벼락부자가 될 수 있을 건만 같았다

'장영자 이순자 등 빨간 바지니 치맛바람이니 부동산에 여자들의 광풍이 휩쓸고 간 후이기도 하다

너도나도 알게 모르게 피해의식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녀도 코웃음치며 사지 않았던 잠실 13평 연탄 아파트가 천정부지로 가격이 오르는 걸보며 어이없었고

잠실 13평 아파트를 팔고 이사한 언니는 몸 져 눕기까지 했었다

그런 기회가 땅에 있다는 교육이다

개발 이슈가 있는 곳을 골라 사면 아파트가 들어서고 공단이 들어서고 일확천금의 기회가 된다

천당 밑에 분당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고 앞으로도 그런 곳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으니

정부의 개발 계획을 잘 알 수 있어야 하고 재벌 그룹의 동향을 잘 살펴 재벌그룹의 땅 주변의 땅을 살 수 있으면 좋지만

일반인들이 그런 정보를 얻기는 어려우니 회사가 알아낸 정보를 통해 땅을 사면 백발백중 땅값이 뛰어오른다는 내용이다


하루 종일, 몇 날 며칠을 교육을 받으니 땅만 사면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TV만 틀면 "부자 되세요"예쁜 여배우가 외쳐대고 있을 때였다

부자가 되고 싶었다, 땅을 사야만 할 것 같았다

회사에서는 교육하는 틈틈이 전화번호부를 주면서 고객들에게 전화를 하게 했다

하루 삼백 통을 하면 반드시 고객이 생긴다며 우수사원의 성공사례를 예로 들었다

6부의 서 차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쟁반에 하나 가득 수당을 받아 가는데

우리처럼 신입시절에 목이 쉴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는 실례를 들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말문을 터야 할지 모르는 신입사원을 위해 부장이 멘트를 써주기도 한다

고객이 전화를 받으면 무조건 읽어주면 된다지만 고객의 반응이 다르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

회사에서는 이런 경우에 대비하는 매뉴얼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고객들이 질문할 만한 내용들을 추려서 모범답안을 만들어 놓았다

비슷한 질문이 나오면 그대로 읽어 주기만 하면 된다

정차장은 틈만 있으면 6부로 가서 서 차장의 전화 내용을 엿듣기도 하고 녹음을 하기도 했다

부장이 독촉을 하지 않아도 신입 직원들은 땅을 팔고 싶어 애가 닳았다

사기만 하면 일확천금이 될 것 같은 땅을 자신만 못 파는 것 같은데

부장은 땅 팔 생각하지 말고 일단 전화만 삼백 통 하라고 종주 먹을 대었다

아직 부동산 지식도 없는 초보한테 전 재산을 맡기는 사람은 없으니

주변 사람들에게 땅 팔 생각하지 말고 전화 응대로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신입 직원 옆을 지키며 목소리를 키우라는 둥, 강약을 조절하라는 둥,

쓸데없는 개인적인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아야 하지만 친밀감을 만들어야 한다는 둥

잔소리를 해대었다

"그런데 언니, 서 차장 보니까 전부 주변 사람들이야, 언니, 동생, 숙부 이런 사람들한테 땅 팔았던데

우리 전화만 하다가 실적 없어서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부장은 괜찮다고 하지만 내 옆자리 이 과장도 어제부터 안 나오잖아

가끔 자리 비는 사람도 많고 신입 직원도 많고, 계약이 없으면 오래 버틸 수는 없는 거 같아,

땅 팔면 우리도 돈 벌고 사는 사람도 돈 버는데 부장은 왜 우리한테 아는 사람한테 땅 못 팔게 할까?

땅 못 팔면 우리 잘리잖아, 6부는 매일 두 명씩 잘려도 입사하려는 사람들이 줄 서 있대

6 부장이 성격은 고약해도 실력이 있잖아, 우리 부장은 착하기는 한데···

아무튼 회사도 공짜로 월급만 주지는 않을 것 같아, 빨리 계약을 해야지"

"서 차장은 오래 했잖아, 실력이 있으니까 주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겠지"

"언니는··· 모르는 사람 설득하는 게 더 힘든 거지, 우리 친정 언니한테 말하면 땅 살 거 같은데

교육받은 걸 보면 금방 오를 거 같잖아 분당만큼 오르면 우리 언니도 좋고 나도 좋을 텐데"

"그래 나도 사고 싶기는 해, 돈 있다면 나부터 살 거 같아

뭐 하느라 종잣돈도 못 벌어놨나 몰라, 이럴 때 돈 있으면 얼마든지 잘 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

"계약해서 돈 벌어야지 뭐, 나도 돈 벌면 이번에는 땅 살 거야"

정 과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도 그녀의 언니 생각을 했다

경기 좋을 때 언니와 양평 땅을 보러 간 기억도 있기 때문이다

언니라면 땅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튼 전화는 해야지 뭐, 어제 전화하던 고객이 오늘 다시 통화하자고 했거든

5천만 원 여유 자금 있는 회사원이래,

모르는 사람이 내말 듣고 땅을 사면 자신감이 붙을 거 같기는 해

부장이 경험했다잖아, 아는 사람이 더 힘든다고, 해보는 데 까지는 해 봐야지 뭐"

"언니는 좋겠다, 그럼 오늘 그 사람 내사 잡을 거야?"

"글쎄, 부장이 내사만 시키라니 해보려고 내사는 올 거 같아, 땅에 대해 엄청 궁금해했거든 "

"언니는 좋겠다" 풀이 죽은 듯한 정 과장의 눈에서 불이 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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