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7일 중앙일보 'STORY' '예술가와 친구들 '글에 통영의 화가 전혁림을 재조명하는 글이 실렸다 이 글을 통해서 본 통영은 내가 알고 있던 아름다운 항구도시만은 아니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살아 숨 쉬는 고장이었다. 통영에서 고동주 문학상이 열리고 있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전혁림은 1952년 제1회 개인전을 부산의 밀다원에서 열었다. 유치환은 개인전 서문에 "해바라기가 아무리 강장 하기로 아기자기한 봄날 무법하게 무엇이나 성장하는 계절에는 피지 않고 따로 필 날을 가지듯 그렇게 그의 예술이 필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썼다. 해바라기는 피어도 너무 늦게 피었다. 중앙일보사 발행의 '계간 미술'은 1979년 '작가를 재평가한다'라는 특집을 꾸몄고 평론가 석도륜이 전혁림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특집에서 거론한 작가들 중 유일한 지역 작가였고 드디어 중앙 화단에서 적극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태어난 (1915~2010) 통영은 고깃배가 드나드는 전형적인 어항이자 아기자기한 미항이었다 해산물이 많이 나니 경제가 풍성하고 풍광이 좋으니 인물이 많이 났다. 유치진, 유치환, 박경리 , 김춘수, 김상옥 윤이상, 전혁림들 수많은 문학가와 예술가가 나왔고 1945년 9월에 '통영 문화 협회'가 결성되었다 이들은 연극 공연, 미술전람회, 민속뮤용 발표회 등 문화 계몽운동을 전개하고 근로 청소년을 위한 중학교 과정의 공민학교 야간부를 개설했다. 한글 강습회를 열고 유치원도 운영했다
신문기사는 이 중 늦게 피는 해바라기 같은 전혁림화가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나를 들뜨게 하는 것은 일찍 싹튼 통영의 문화이다. 쟁쟁한 문학인과 예술인들이 1945년에 통영 문화협회를 만들었다는 데 주목한다. 특히 어려운 시절에 뛰어난 문인들이 대거 참석했던 열정에 감동했다. 1945년이라는 시점이 무색할 정도로 진보적이고 선도적인 활동들이었다.
마침 6월 28일 , 통영 여행을 해야 할 일이 있다. 고동주 문학상 독후감상 말미에 '사랑바라기에서 배우는 사랑'이라는 내 글이 발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써놓고 보니 한없이 부족한 글이라 부끄럽기 짝이 없으나 더 열심히 쓰라는 격려의 말로 들어 본다
감히 전혁림 화가와 비교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무엇이나 성장하는 계절에는 피지 않고 따로 필날을 가지는 해바라기'라는 글에서 뒤늦게 시작한 글쓰기에 위로를 받는다
해바라기처럼 활짝 피지 않아도 괜찮다. 늦게 피었다고 누구나 전혁림 화가처럼 해바라기가 될 수는 없지만 늦게라도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으니 행복한 일이다.
해바라기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것은 주변에 있는 많은 잡초들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이름 없는 풀씨였으니 해바라기일지 잡초일지 알 수는 없다. 태생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남들에게 보여 주는 좋은 글이 아니라 나다운 글을 쓰고 싶다. 이번 통영 여행이 첫걸음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