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도 비껴가던 더위가 한 풀 꺾였다.
권불 삼 년이라던가?
유난히 극성스럽던 더위에 지쳐 몸살을 앓았건만
소낙비 몇 번에 시원해지니 여름 더위가 조금 만만해진다
아직 여름 초입이니 앞으로도 한 달 이상 더위에 시달려야 한다
여름이 조금씩 길어지고 있는 듯하니 두 달이 될지도 모르겠다
'가을볕에 며느리 내보내라'는 말이 있듯이 가을에도 한낮의 더위는 서슬이 퍼렇다
그나마 가을 더위가 고마운 것은 저녁나절부터 시원해지는 것이다
그때 소슬바람은 장에 간 아버지 기다리는 심정이 된다
한줄기 바람에 온갖 시름이 씻겨 내리는 듯한 청량감,
아버지의 등짐 속에는 알사탕까지, 노심초사 기다리는 것들이 쏟아져 나오곤 했다.
여름 더위가 무서운 것은 열대야 때문이다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의 더위는 시지프스의 바위 굴리기처럼 끝날 것 같지 않은 절망감을 준다
장마와 태풍이 신기루처럼 나타나기는 하지만 오아시스는 아니지 않은가?
여우굴 피하면 호랑이굴 나오듯 이런것들은 잠시 더위를 잊게 하지만 더 큰 상흔을 남길 수 있다
여름철에 넘어야 할 산이 되고 만다
그나마 그런 장마마저 건너뛰나 했더니 늦게나마 장마가 제자리를 찾아들고 우선은 소강상태인 열대야가 고맙기는 하다
모처럼 시원한 잠자리를 에어컨 없이 맞을 수 있다.
장마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조금 더 시원한 날이 계속되었으면 한다
장마 지나면 태풍이 기다리고 있건만 일단 발 등에 불은 꺼진 것이다
이제야 배롱나무꽃과 연꽃이 생각난다
여름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 들이다
이맘때면 한두 번 꽃 나들이를 했을 텐데 올여름은 초입부터 더위의 기세에 눌려 생각조차 못 했다
연꽃은 이미 만개했을 터이고 배롱나무꽃은 이제부터 한참이다
이번 주말은 연꽃 먼저 보러 가려한다
연꽃은 연못에 피니 나무 그늘을 찾을 수 없어 땡볕을 감당해야 한다
연꽃을 보려면 더위를 이겨야 하지만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하고 노래한 시인도 있다
더위와 연꽃의 한판 승부라면 이제까지는 연꽃이 이겼다
더위 불사하고 연꽃 나들이를 해왔다
휴대폰이 뜨거워져 사진을 찍을 수 없어도 연꽃 보기를 마다하지 않았건만 올여름엔 게으름을 피웠다
이른 더위 때문이라고 변명해 본다
아직은 꽃을 볼 수 있는 날들이 남아 있는데 마침 이번 주는 비 예보가 있어 더위가 주춤거릴 듯하다
열일 제치고 꽃 나들이를 해야 한다
연꽃 보러 하루, 배롱나무꽃 보러 하루, 꽃과 보내는 주말, 생각만으로도 즐거워진다
연꽃의 청초함과 배롱나무꽃의 화려함,
전혀 다른 매력이지만 한여름 태양의 기세에 굴하지 않는 기개가 있다
이제껏 몸을 사리던 여름 더위건만 서슬 퍼렇던 권좌에서 물러난 위인처럼 만만해진다
한두 달쯤 더위가 남아 있으면 어떠랴, 곧 지나갈 것이고 지나가면 그리워질 것이다.
여름에 잠시 피었다 지는 연꽃과 배롱나무꽃을 보는 일, 일 년을 다시 기다려야 하는 일이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여름 더위도 곧 지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