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열대야가 엊그제이었건만 오늘 새벽은 카디건을 걸쳐야 할 만큼 선선하다
따스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니 손끝에서 퍼지는 온기 ,
모처럼 여름날에 가지는 호사이다
이를 시샘하듯 멀리서 우르릉 먼 천둥소리가 들린다
뒤늦은 장마이다
얼마쯤 더위야 가시겠지만 몸에 감기는 습기를 견뎌야 한다
요 며칠 사이의 일이다
여름 한철이라지만 날씨는 변화무쌍이다
끝날 것 같지 않은 더위에 반바지를 준비했건만 하루 종일 천둥번개가 칠 거라는 예보가 있으니 오늘은 장화를 신어야 한다
여름 데일리 룩 포인트? 그때그때 다르다
솔직히 반바지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너무 더운 여름날 남자들의 긴 바지가 답답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반바지를 입고 털 숭숭 난 다리를 들어낸 모습을 보는 심정은 편하지는 않다
여자들에게는 더위를 피하기 위한 미니스커트가 있건만 굳이 속옷 크기의 반바지를 입는 것도 마땅치 않다
이쯤 되면 불평 많은 꼰대가 틀림없지만 누울 자리 보고 발 뻗어야 한다
평소엔 입 꾹 다물고 있다 마침 블로그 님 질문이니 대답을 핑계 삼아 터놓는 말이다
그런 내가 입을 반바지를 사야 했다
더위도 한몫했지만 사실은 복지관 AI 헬스 때문이다
샤워실이나 탈의실이 따로 있지 않다
입은 채로 운동하고 땀에 전 운동복을 입고 다녀야 한다
집이 가까우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전철을 타고 나들이하듯 가야 하는 내 처지로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운동만 하러 가기엔 무리가 있어 외출하는 김에 수 업을 듣는다던가 장을 본다던가 친구를 만나는 일을 하고 귀가를 하게 된다
헬스장을 이용하는 시간이 다섯 시까지로 정해져 있어 일을 마치고 운동을 하는 경우에는 그나마 다행이건만 늦은 약속이 있는 경우에는 땀에 전 옷을 입고 있을 수밖에 없고 스커트를 입고 운동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운 여름날에도 다리에 감기는 긴 바지를 입어야 한다
그나마 반바지가 나을 것 같다
사실 장마철에도 긴 바지보다는 짧은 반바지가 낫다
우산을 쓰고 우비를 입어도 다리 밑은 드러나게 되고 비에 젖어 척척하게 된다
반바지나 치마가 좋다
반바지 하나로 운동복과 평상복 외출복을 해결하려는 할머니도 이렇게 옷 투정을 하게 된다
여름 데일리 룩 포인트는 그때 그때 다를 수밖에 없다
운동할 때는 운동복, 장 볼 때 입는 편한 옷, 집안일을 할 때는 에이프런을 걸쳐야 하고
장마철에는 장화를 신어야 한다
모처럼 친구와 약속에는 근사한 정장도 한번 입어야 한다
실용주의 패션이 대세인 시대라 검은 상복도 옛말이 되어 버렸지만 너무 화려한 옷을 입은 조문객을 보는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등산 할 때는 등산복을 입어야 하고 수영장에서는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
공공장소에서는 너무 개성이 드러나 민망한 옷은 조금 삼가는 것이 옳다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야 하는 다른 사람 입장도 헤아려야 한다
세상살이 혼자서는 못한다
내 개성을 지키고 싶으면 다른 사람 심정도 헤아리는 게 맞다
적어도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옷은 입는 사람도 편하지 않을 듯하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찜통 같은 더위에는 새벽 잠깐 동안 카디건을 걸쳐야 한다
때와 장소에 맞게, 패션은 그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