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야 꽃 피우기

by 우선열


요즘 내 하루는 호야 꽃을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먼동이 트기 전 베란다 문을 열면 분홍별처럼 빛나는 작은 꽃이 눈에들어 온다.

손톱만큼 작은 호야 꽃은 아주 정교하다

분홍 꽃잎이 다섯 장 펼쳐지고 그 위에 다시 같은 핑크빛 꽃잎이 다섯 장, 별 모양이다

별의 가운데를 진홍빛 오각형이 장식하고 가장 핵심에는 노란 점하나 찍혀 있다

화룡점정, 마지막 용의 눈을 그려 넣던 화가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참으로 정성스러운 꽃이다


어느 꽃이던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호야 꽃의 아름다움은 특별하다

아주 작지만 작아서 애처로운 모습이 아니다, 한 송이 한 송이 완벽하다

마치 플라스틱 꽃처럼 단단해 보이기도 한다,


호야 화분이 내게로 온 것은 7~8년 전쯤의 일이다

그저 ' 오래 전'이라고 기억되는 시간이다

있는 듯 없는 듯 베란다를 차지하고

특별히 보살피지 않아도 호야는 잘 자랐다.

꽃이 피지 않는 대신 잎이 분홍으로 물들거나 노랗게 변하기도 했다

'포인세티아처럼 잎이 꽃처럼 피는 꽃인가 보다 '

그렇게 생각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초라한 내 베란다를 한결같이 지켜 주는 것만으로 고마웠다


무심한 성격 탓인지 무딘 솜씨 때문인지 나는 꽃나무를 잘 키우지 못한다

담장 넘어 예쁜 꽃들이 부러워 몇 번 꽃 키우기를 시도해 보았지만

잠시 예쁘게 피다가 시들고 마는 꽃이 애처로웠다

꽃이 시들어 버린 빈 화분을 치우지 못하는 미련이 힘겨웠다

'다시는 꽃나무를 키우지 않겠다' 선언을 하고 난 뒤에 남은 화분이

산세비에리아와 호야, 금전수였다


선인장과에 속하는 이 꽃들은 특별히 보살피지 않아도 잘 컸다

들은 풍월로 선인장과는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냥 베란다 구석에 놓아두는 것, 그것만으로 잘 자라주는 게 고마웠다

호야는 길게 넝쿨을 드리우며 크다가 분홍 잎이나 노란 잎으로 재롱을 부리고

산세비에리아와 금전수는 잊을만하면 새싹을 틔웠다

연한 초록색 잎이 얼마나 예쁘던지 새싹이 돋을 때마다 환호성이 터졌고

이들은 무럭무럭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특히 산세베리아는 내 손으로 처음 분갈이를 해준 식물이니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작년 이맘때 여름휴가를 다녀오니 베란다 화분에 꽃이 피어 있었다

처음엔 산세비에리아 꽃인 줄 알았다

산세비에리아 새싹이 예뻐 작은 호야 화분을 뒤에 두고 넝쿨을 산세비에리아에 걸쳐두었더니

마치 산세비에리아 꽃처럼 보인 것이다

내 무식의 소치이기도 하다

산세비에리아도 호야도 꽃이 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니 헷갈릴만했다

호야 꽃이 내게로 온 날이다


그제야 호야를 애지중지 보살폈다

폭풍 검색을 해보니 호야는 한번 피면 연속해서 피어난다고 한다

내년에도 호야 꽃을 볼 수 있겠구나'

욕심에 눈이 어두웠지만 내 둔한 손길을 믿을 수는 없었다

꽃이 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혹이 짙어졌다

노심초사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호야 꽃은 4월에서 8월까지 핀다

작년에 8월에 피었으니 올해도 8월에 필 거야 '

이렇게 생각은 했지만 4월에 여기저기 호야 꽃이 핀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좌불안석 불안한 마음을 달래야 했다

'8월이야' 그나마 작년 8월에 피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었다

'8월 까지는 기다려 보리라'몇 번씩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심 봤다"

6월 초가 되자 호야에 꽃망울이 맺혔다

별모양 활짝 핀 호야와는 다르게 앙다문 모습이었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새침한 꽃망울은 쉽게 곁을 주지 않았다

일주일에 걸쳐 조심스럽게 한 잎 한 잎 마지못해 입을 연다

노심초사 기다리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싫지 않았다

7~8년에 걸쳐 피워낸 꽃이다

인고의 그 시간을 어찌 짐작할 수 있으랴

기특하고 대견할 뿐이다

내 무심한 성격과 무딘 솜씨를 견뎌내고 피어난 꽃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니 우리의 인연은 영겁의 시간에 걸쳐 쌓인 없일 수도 있다

'천천히 피어라, 더 단단하게 오래 버텨 보자꾸나 '

호야 꽃이 말하는 듯하다


드디어 만개한 호야 꽃

그 단단한 모습처럼 호야 꽃은 오래 피어 즐거움이 크다

새벽마다 베란다 문을 열며 꽃을 보는 즐거움을 누린다

언젠가는 지고 말 것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리 애처롭지는 않다.

오랜 시간에 걸쳐 기꺼이 자신의 꽃을 피워내고야 마는 호야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지고 말 것을 알고 있다고 피지 않는 꽃은 없다

한 송이 꽃을 피워내는 일, 그것으로 되었다


호야 넝쿨에는 이미 꽃눈이 두 송이 자리 잡고 있다

아마 나는 올해 두 송이 호야 꽃을 더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7~8년 만에 어렵게 피어난 꽃, 그 인고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힘들게 피었지만 그 길이 누군에게 위로가 되었다면 꽤 괜찮은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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