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반 수업에 딸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서는 문우가 있었다 어머니를 정성스레 보살피며 들어온 문우의 딸은 교실에 와있던 우리들에게도 상냥하게 인사를 했다. 어머니 앉을 자리를 정리하고 가방을 걸고 필기구까지 꺼내어 놓는다 .어린 자식 돌보듯 자상하다 "엄마, 꼭 필요한 말씀만 하세요, 중언부언 말 늘어놓지 마시고요" 자식을 타이르는 부모 같이 신신당부한다. 문우는 마치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딸의 말에 다소곳이 귀 기울이다가 딸이 교실문을 나가자 옆 동료에게 가만히 말한다 '나는 걷지를 못해요, 얼마 전에 사고를 당한 후로는 겁이 나서 바깥출입을 못합니다 딸이 도와주지 않으면 꼼짝을 못 하는 형편입니다" 뒤에 있던 문우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세상에 저런 딸이 어디 있어요, 아무나 못하는 일입니다, 나도 못해요" "자식도 있을 거 아니에요?" ,"자식한테 하는 거 반만이라도 하면 불효는 없을 텐데 ···" 문우의 딸을 칭찬에 여념이 없다.
문득 벚꽃이 하염없이 지던 봄날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우리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날 어머니의 발병 소식을 들었다 .엄마를 찾아가며 '어머니는 이번 벚꽃을 못 보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98세, 어머니는 5남매를 두셨지만 2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혼자 사시기를 원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큰 동생이 살고 있었지만 도움을 받는 것을 싫어하셨다 . 도우미를 권해드려도 완강히 거부하셨다. 사는 동안은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사시겠다는 의지가 강하셨다.
어머니가 70세 무렵 어머니와 장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어머니는 슈퍼 계산대에 무언가 검은 비닐에 쌓인 것을 내놓으셨다 "엄마, 이게 뭐야? " 비닐봉지를 풀며 내가 물었다 "응,내가 요즘 요실금이 생겼어, 재채기를 해도 크게 웃어도 질금질금 흘러, 기저귀 차야 하는데 다른 사람 보면 부끄럽잖니 ?" '엄마, 그게 뭐가 부끄러워 당연한 일이지, 그만큼 건강하신 것도 자랑이에요" 큰소리쳤지만 가슴으로 도랑물 흘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나이 들어간다는 걸 깨달은 날이었다. '이제부터 기저귀는 내가 사다 들여야지' 생각은 했지만 한 번도 그러질 못했다. 어머니는 늘 검은 비닐을 가지고 슈퍼에 가셨을 것이다 . 벚꽃을 보며 어머니를 뵈러 가던 날, 어머니는 그날부터 몸 져 누우셨다. 이렇다 할 지병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노환이었다. 입원을 권했지만 완강히 거부하셨다.
우리는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콧줄을 단채 3년을 누워있던 기억이 있다. 손발이 묶인채 의식이 오락가락 하던 아버지를 보며 차마 우리 손으로 콧줄을 뺄 수는 없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를 삼 년간 속수무책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우리는 어머니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어머니의 의사는 강했다. 병원에 가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셨다. 의사의 왕진도 허락하지 않아 주치의와 통화만으로 병세를 가늠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식사를 전폐하셨다. 처음에는 드실 수 없는 것 같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우리는 어머니가 식사를 거부하시는 것 같다는 눈치를 챌 수 있었다. 물 한 모금마저 마시려 들지 않았다 .의식이 없으신 상태에서' 물 '하시다가도 물을 드리면 입을 굳게 다물고 열지 않으셨다. 더 힘들었던 건 배변이었다. 기저귀를 채워드렸건만 자식들 손에 배변처리를 맡기는 걸 못 견뎌 하셨다. 기어서라도 기어이 화장실로 가셨다. 신체가 마비되어 가는 중이니 어머니 의사와는 달리 변은 이미 배출된 상태였다. 어머니와 가장 가까웠던 딸인 내가 "엄마, 기저귀 채웠어, 여기에 배변하시는 게 우리도 편해, 엄마 화장실까지 모시고 가기도 힘들고 뒤처리가 더 힘들어, 그냥 편하게 하세요" 하면 내 안경을 잡아채며 입을 앙 다무셨다. 그 강한 의지를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결국 어머니는 올해 벚꽃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하직하셨다 .벚꽃이 홀연히 지고 말던 그 봄날이었다.
강한 듯하던 어머니는 오히려 가장 약한 분은 아니셨을까? 아무에게도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으셨다 .그때 내가 기저귀를 사다 드렸다면 어머니는 좀 더 내게 마음을 터놓지 않으셨을까? 문우의 따님처럼 처럼 내가 좀 더 살가웠다면 어머니는 내게 약한 모습을 보이실 수 있었을까?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는 기회를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어머니의 약한 모습을 한 번만 인정했더라면 그래서 어머님을 부축할 기회가 한반만이라도 있었더라면 오늘처럼 마음 아프지는 않을 듯하다. 나는 평생 어머니를 부축하여 나들이 한번 해보지 못한 못난 딸이다. 홀연히 지고마는 벚꽃같던 우리 어머니. 남은 평생 우리는 벚꽃 앓이를 해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