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출근도 육아도 힘들었다. 해야 할 일들이 파도처럼 쉼 없이 밀려왔다.
거기서 거기, 하루하루가 비슷했지만 같지는 않았다. 매일매일 처음 하는 일들이었다.
철썩철썩 쏴아,
파도는 때로 거칠게 또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가만가만히 천 개의 모습으로 왔다가 사라졌다
환희에 넘치는 순간도, 금방이라도 질식해버릴 듯 숨 가빴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어릴적 꿈과 희망의 날들이
성인의 의무와 책임으로 바뀌는가 했더니 어느새 추억이 되었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나는 젊었거니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설워라 커든 짐을조차 지실까' (정철의 훈민가 중에서)
젊은이들의 측은한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
익숙한 장면이기는 하다
사람에 따라 시대에 의해 조금씩 다르기는 했지만 절차는 같았다
태어나서 성장하고 늙는,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여정
이제 이순을 넘어 망팔을 바라보고 있다
육아도 출근도 거리가 멀다
가끔은 황혼육아라고 손주를 돌보는 친구들도 있다
파도가 그때그때 다르 듯, 때와 장소와 사람에 따라 이유도 명분도 다른 일들이 있기는 하다
개인의 선택일 수도 있고 시대의 변화에 의해 동시대 사람들이 같이 겪어야 하는 일들도 있다
우리는 일제 탄압의 잔재 속에서 전쟁을 겪은 부모 세대를 보며 자랐다
전쟁의 폐허가 두렵다 한들 포화 떨어지는 전쟁터보다 더할 리 없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터로 내몰리는 삶에도 감사했다
잘 살아보리라는 희망만으로 버텨야 했다
세월이 쏘아 놓은 화살과 같다더니 그런 세월도 어느새 지나갔다
"요즘 젊은 것들은, 나 때는 말이야" 하는 말이 거침없이 나온다
의무와 책임이라는 짐을 벗었으니 홀가분해지려니 했다
그러나 예측할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질곡의 세월을 벗어나니 백세 시대가 기다리고 있다
감당해야 할 세월이 30년, 덤으로 지워졌다
70년을 넘게 살았다 한들 새롭지 않은 오늘은 없다
늘 오늘은 처음이다
배워야 하고 살아내야 한다
예기치 않게 긴 준비되지 못한 30년 세월도 감당해야 한다
까도 까도 새 껍질이 나오는 양파 같다
인생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을 양파같지만 까야 쓸 수 있다
까져야 향과 맛이 살아나고 제역할을 한다 .
내 앞에 놓인 인생의 양파를 까는 일, 그게 삶이다
내가 느낀 희로애락의 감정이 내 인생이 된다
누구에게나 처음인 오늘.
삶이란 내게 맡겨진 오늘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하는 것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