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아가씨의 첫 부임지가 울산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아름다운 학교를 상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1970년대 울산시내 남자 중학교는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다.
비릿한 갯내음이 섞인 습한 바람, 거친 바람에 덜컹거리는 유리창
그림같은 바다를 그리던 내게 울산의 봄은 그리 녹녹치 않았고
축축한 공기에 섞인 소금기는 끈끈하게 달라 붙었다
잔치 뒤의 썰렁함처럼 흔적만 감지 될 뿐 바다는 너무 멀리 있었다,
말다툼같이 억센 억양이 버거워 말을 건네기도 만만치 않았고
내게 건네지는 말들도 한참을 지나야 알 수 있었으니 차라리 혼자가 편했다,
세상에 할일은 너무 많았고 해야하는 일들에 쫓기는 듯한 일상이었다
앞서 가고 싶은 열망, 성취에의 욕구, 젊음의 치열함만으로도 벅찬 시절,
소통의 부재는 그만큼 힘겨웠다,
나는 늘 탈출을 꿈 꾸면서 그만큼 더 현실을 감당해 내려 애썼다
현실 도피가 아닌 발전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
그건 아마 내가 제일이라는 젊음의 치기였는지도 모른다.
낯 설던 사투리에 익숙해져 나도 모르게 억양이 닮아가고, 끈끈한 습한 바람에 적응 했을 때,
내 주변에는 나처럼 낯선 환경에 첫발을 내딘 고향지인들이 모여 들었다.
동향인이라는 한가지만으로도 마냥 친근할 수 있었던 사람들.
사람의 일인지라 때로는 호의가 악의로 돌아 오기도 했고
호의를 노린 악의적 접근도 있었고 아름다운 순간들도 있었다,
산업체 근무를 하면서 대학공부를 하느라 늘 피곤해 하던 고학생,
남편 따라 멀리 울산까지 와 입덧으로 고생하던 선배,
동향인을 찾아다니며 책을 팔거나 보험을 팔던 지인들,
여고를 졸업한 후 산업전선에 뛰어 들었던 후배들,
그중 가장 반가웠던건 갓 결혼을 하고 남편의 직장을 따라 울산에 온 여고 동창이었다
"선우야, 나 이사 왔어, 방어진 바다가 보이는 언덕이야 빨리 와 "
그녀의 목소리에서 나는 내가 되어 있던 외톨이 이방인의 모습이 그려졌다
허겁지겁 길을 나섰지만, 휴대폰도 없었던 시절
바다가 보이는 언덕을 향한 그 날의 내여정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집을 찾을 수 있었다
"남편 올 때까지 해바라기야, 혼자 섬에 유배 된거 같아, 바람은 왜이리 거세니?
히스크리프처럼 떠도는 원혼의 목소리가 들리는 둣해,"
그날 그녀가 쏟아 놓은 말들은 꼭 바닷가가 아니더라도 불투명한 미래에 발을 내딛으며
우리의 삶을 만들어야 했던 우리가 보낸 젊은 시절의 한 편린으로
내게 각인되어 있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을 무작정 찾아 나섰던 무모함,
바다가 보이는 언덕이 그림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현실.
내 젊은 날의 자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