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꽃 처럼

by 우선열




걷기를 좋아한다

낯 선 길보다 익숙한 길이 편해서 집 근처 탄천 길, 석촌호수, 양재천, 대모산, 등 익숙한 산책코스들을 자주 찾는다다

하루 만 보이상 걷는 걸 목표로 하고 있지만 꾸준히 지키기는어렵다

늘 일정하게 걷기보다는 작정하고 산책을 나서는 특정한 날 많이 걷게 된다.

막상 좋아하는 산책 코스를 걷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지만 운동화 끈 매기는 여전히 어렵다

비가 와서, 햇볕이 강해서, 온갖 핑계를 대며 미루게 된다.

은퇴 후 생활 반경이 줄어드니 운동량 부족해져 하루 평균 만보를 채우기 어려워 졌다

생활 속 운동량을 늘려야 한다 .

외출 시 조금 일찍 나가 한 두 정거장 걷기와 계단 걸어서 오르기를 한다


요즘 정해진 나들이로는 복지관 가는 일이다

강남시니어 센터와 삼성동 복지관, 논현동 복지관을 주로 이용한다

거리는 가깝지만 전철을 타면 환승을 해야 한다

갈아타느라 오가는 시간과 기다리는 시간보다는 그 시간에 걸어가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강남 거리를 걷는다.

운동 삼아 걷기 시작했지만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심코 지나쳤던 강남 거리의 세세한 풍경을 눈에 담는다.

그저 빌딩 숲이려니 지나쳤던 거리의 새로운 모습들이 보이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표정을 살피는 재미도 있다


거리에는 젊고 예쁜 청년들이 많다

배꼽과 어깨와 허벅지가 드러나는 헐벗은 모습을 보고 놀라기는 하지만 짐짓 모른척하려 애쓰고 있다.

시대가 변했으니 옛날의 도덕적 잣대나 관습을 고집할 수는 없다

젊은이들의 트렌드를 따라가야 한다

다만 내 딸이라면 난감해질 것 같기는 하다. 잔소리 대마왕이 될 것만 같다.

딸이 없어서 서운하다가도 이런 옷차림의 젊은이들을 보면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도시의 빌딩 주변에는 각종 식물들이 예쁘게 가꾸어져 있다

흙길이 아니라 포장도로에서 마주치는 초록은 더 애틋하다

강한 생명력에 감탄하며 더 나은 환경에서 잘 자라게 해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회색 빌딩 사이에서 초록 식물을 누리는 즐거움이 있다

빌딩들 사이에서 독특한 외관의 건물들을 보는 재미도 있고

거리마다 가로수 그늘을 찾는 즐거움도 있지만

그 화려함 속에서 내 시선을 잡아당겨 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은 배롱나무꽃이다


배롱나무꽃의 진홍빛을 좋아한다

화려하지만 지나치지 않은 건 초록 잎과의 조화일 수도 있고 튀지 않는 꽃 모양 일 수도 있다

배롱나무꽃은 작은 꽃들이 수없이 피어 한 송이를 이룬다

군무의 아름다움을 보는 듯하다.

함께해서 아름답지만 구성원 모두가 아름다워야 진면목을 볼 수 있게 된다


젊어 한동안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감으로 힘들었던 적이 있다

세상 모두가 무채색이었다

허수아비처럼 무심코 계단을 오르는데 앞선 여인의 핑크빛 치마가 눈에 들어왔다

경쾌한 모습이었다. 핑크빛이 곱디 고왔다. 배롱나무 핑크빛이었다

순간 다른 아유 없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남 거리에서 배롱나무꽃만 보면 걸음을 멈추는 이유이다


배롱나무꽃은 화려하지만 꽃송이는 튀지 않는다

서로가 어우러져 이루는 아름다움이다.

오래 피지만 송이송이 피고 지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여름내 배롱나무꽃이 예쁜 이유이다


남은 인생은 배롱나무꽃처럼 살아내고 싶다

화려해도 드러나지 않으며 어우러져 더 예쁜 모습

회색빛 도시에서도 생기를 잃지 않는 진홍빛 생명력 으로

지친 누군가에게 그냥 살아야 한다는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런 모습이고 싶다


오늘도 배롱나무꽃을 찾아 강남 거리를 걷는다

배롱나무 꽃처럼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이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