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영하의 기온으로 시작된 하루였다.
조금 일찍 찾아온 겨울인가 싶더니, 성큼 다가와 제 영역을 분명히 해버렸다.
극성스러운 더위 때문에 늦어진 가을은 아직 제자리를찾지 못했는데
겨울이 문틈을 비집고 들어와 앉았다
나무들은 급한 외출에 허겁지겁 분칠하는 여인네처럼 하루아침에 울긋불긋 물들고,
성미 급한 나무 잎들은 단풍이 들기도 전에 낙엽이 되어 떨어진다.
가을이 제자리를 잡기도 전에 겨울이 먼저 발을 들였다.
긴가민가, 아직은 정처 없는 가을인데 겨울 냄새는 거침이 없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아니라 까치밥으로 남은 홍시의 농익은 냄새다
살랑 코끝을 간지럽히는 은은한 차 향이 아니라 온몸을 데워줄 뜨끈한 국물이 그리워지고
가벼운 와인 한 잔이 아니라, 알싸한 소주 한 잔이 위로가 되는 계절이다.
겨울의 매서운 추위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는 강해져야 한다.
가을이 제자리를 지킬 때는 미처 몰랐던 변화이다
준비 없이 맞이한 계절 앞에서 몸보다 마음이 먼저 얼어붙는다.
하나씩 오르던 계단을 한꺼번에 뛰어오른 듯,
갑작스러운 변화는 귀를 먹먹하게 하고, 숨을 가쁘게 하며, 눈을 충혈되게 한다.
때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겨울의 느닷없는 선전포고 앞에서,
나는 패딩을 꺼내 입으며 바바리코트에 눈길을 떼지 못한다.
뒤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한 많은 여인처럼 미련이 남는다.
이미 길을 나섰으니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찬바람이 무섭다고 뒤로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인생은 혼자 걷는 외길이라 했다.
다시 돌아올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뿐이다.
기왕이면 능동적으로 해보려 한다.
뒤돌아보며 걸음을 늦추기보다는, 갈 수 있는 데까지 멀리 가보고 싶다.
지금은 낯설고 험한 길이지만 나의 발자국이 누군가에게는 길잡이가 될지도 모른다.
풀 섶에 난 작은 길, 눈 쌓인 길에 찍힌 발자국 하나를 따라 걷는 이도 있을 테니까.
북풍한설이 몰아칠 수도 있고, 어쩌면 순해진 겨울날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 빨라진 겨울에 따스한 봄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을수도 있다.
짧아 서러운 가을을 미련 없이 보내려 한다.
두터운 패딩으로 무장하고 뜨끈한 국물로 얼어붙은 마음을 녹인다.
때로는 독한 소주 한 잔이 위로가 될 수도 있겠다.
겨울이 오고 있다.
나는 그 길을 걷고 있다.
그 길 끝에 봄이 오고 있음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