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지 않은 안부 전화

by 우선열

요즘엔 가까운 지인의 안부전화도 반갑지 않다. 갑자기 울리는 안부전화는 대부분 입원 소식이거나 부고이다. 마음에 준비를 하고 받아야 한다. 일요일 아침 조카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모, 아빠가 대장암이래"

"뭐? 지난주만 해도 건강하셨잖아 좀 여위긴 했지만 ···"

"그러게, 요즘 식사를 잘 못하셔서 가까운 병원에서 영양 주사를 맞았거든, 일주일이 지나도 기력을 못 찾으니 의사가 종합검진을 권유했어, 별일 아니려니 했는데 대장암이 제법 진행되었다네, 아직은 항암주사를 맞고 수술할 수 있으니 사 둘러야 한다는데 기력이 없으셔, 기력보충해야 항암치료할 수 있다는데 "

조카의 목소리가 점점 멀리 들리는 듯 아득해졌다. 우울한 일요일이 되었다.

형부는 우리 오 남매의 맏이이다. 요즘 세상에 맞이가 무슨 의미냐고 하겠지만 우리 시대만 해도 맏이는 부모님 대행이었다. 둘째인 내 결혼이 늦었으니 형부는 더 오랜 기간 우리 남매들에게 부모님 대신 역할을 해야 했다. 미혼인 우리들이 갓 결혼한 신혼집의 살림을 알 수는 없었다.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는 것만 부러워했다. 조카가 태어나는 것도 신기하고 결혼만 하면 안정된 삶을 누리게 되는 줄만 알았다.

부모님이 뒤늦게 사업 실패로 노후에 형편이 어려워졌으니 모든 책임이 언니와 형부에게로 넘겨졌지만 당시에는 당연한 일인 줄만 알았다. 알게 모르게 언니와 형부의 부담이 컸을 것이다. 후에 내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키우며 그제야 깨닫게 된 사실이다. 내게는 그 과정이 남달리 혹독했다. 앞가림이 힘들 정도로 고난의 연속이었으니 언니와 형부의 고충을 알았다고 해도 별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후일을 기약하는 마음이었지만 그것조차 제대로 표현 해 본적이 없고 그나마 세간이 지나며 유야무야 희미해졌다.

지금은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집안의 제일 큰 어른이 형부이시다. 항상 든든하던 형부 모습만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는 형부가 부모만큼 이려니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그동안 어깨에 짊어진 맏이의 짐을 못 본 척했다. 부모 대신인 형부에게 은혜를 갚을 시기였건만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이제야 후회가 밀려온다. 조카 세 자매가 남달리 효심이 강하고 부모를 잘 모시고 있으니 안심하고 있었다. 자식의 역할과 형제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척 눈 감고 있었다

여윈 형부의 모습을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내 설움이다. 기대고 싶은 어른의 부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마음을 다잡았다. 더 미룰 수는 없었다.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고마움을 말해야 했다

"형부 맏이 노릇 하느라 애 많이 쓰셨어요. 고마웠지만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했었네요, 말로만 그치고 싶지 않았어요 보란 듯이 형부 은혜를 갚을 일을 만들고 싶었는데 세상일 뜻 같지 않아서요. 형부가 빨리 회복하셔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세요. 형부에게 받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 싶어요"

기력은 떨어졌지만 정신은 더 명료해진 얼굴에 조금 화색이 돌았다. 푹 패인 볼우물에 약간 미소가 번지는 듯도 했다. 내 말이 조금은 위로가 되는 듯했다 묵묵히 맏이 노릇을 감당하며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더는 미루지 말고 고마운 표현을 해야겠다.

우리 형부는 드라마 PD 셨다. 대학 재학 시절에 희곡 신춘문예에 당선된 재원으로 한국시나리오 작가 100인 안에 드는 인재이시다. 뒤늦게 글쓰기를 공부하는 내가 더 안쓰러우셨던 듯하다. 단톡방에 늘 '글에는 진심과 감동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고마웠지만 제대로 마음을 표현해 보지는 못했다 . 형부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언니는 나와 나는 고작 두 살 차이이건만 맏이라는 굴레 때문에 항상 어른 노릇을 해야 했다. 이제야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형부가 빨리 건강을 회복해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다. 당신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 드리고 싶다. 기력만 회복하시면 아직 기회가 남아있다고 하니 빨리 회복하시기를 바랄 뿐이다. 장성한 조카들이 효심이 가득하니 그나마 위로가 된다.

형부는 기력이 빨리 회복되지 않아 삼성병원 연계 강남 요양 병원에 입원하여 기력 회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돌아오는 2일을 1차 항암치료 기간으로 잡았으니 그때까지 회복을 하셔야 하는데 지금까지 입맛을 찾지 못하여 식사를 못하고 있다. 병원에서는 기력을 회복할 때까지 콧줄을 끼워 식사를 보충하라 한다. 콧줄의 부작용을 경험한 우리는 차마 그 고통을 형부에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조카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마의 일요일이었다. 일요일의 악몽이 걷히고 형부가 항암주사를 무사히 맞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감히 완쾌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한 번이라도 형부에게 회복의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큰 병은 노력만으로 막아지지는 않는다. 사는 게 두려운 이유이다. 안부 전화도 반갑지 않은 세월을 건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