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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이 축복이 될 수 있도록

by 우선열



어느새, 나이 70이 훌쩍 넘어 버렸다. 물 흐르듯 흘러온 세월이니 새삼스러울 일이 아닌데 문득 낯설다. 좁고 험하고 자갈돌 투성이의 계곡을 지나면서도 졸졸졸 즐거웠던 기억이지만 어찌 즐겁기만 했을까?

두렵고 당황하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던 시간들도 있고 바윗돌에 수없이 부딪치기도 했으며 낭떠러지를 경험하기도 했다. 평탄하게 흐르는 듯 보이는 다른 물줄기들이 부러워 마음 다치기도 여러 번이다.

어쨌거나 흐르고 흘러 여기까지 왔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으며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잡느라 정신없이 앞으로만 흐른 세월이다.


이젠 목적지가 가깝다 하니 잠시 쉬어 갈 수 있다 하는데 멈춰 서 보니 주변 풍경이 낯설다. 외딴곳에 혼자 내동댕이 쳐진듯하다, 마치 오래된 골동품을 처박아 놓았다가 발견할 때의 마음 같다. 반갑긴 하지만 쓸모가 없어진 버릴 수 없는 귀한 것, 몇 번을 망설이며 궁리하다가 어렵게 장만하고 희열에 넘치던 순간도 있고 사용하면서 편리함과 요긴함에 감사하고 즐거웠지만 점차 용도가 줄어들고 새로운 것들의 편리성에 뒤처져 몇 번쯤 버려질 위기를 겪기도 했다.

낡고 상처투성이지만 상흔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이 있어 차마 내칠 수도 없고 곁에 두기는 애매한 듯도 하다. 조심스레 닦고 또 닦아 이리저리 놓일 자리를 찾아본다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한다는 노년을 맞았다, 철부지라 늦게 깨닫기는 했지만 올 것은 오고야 만다. 특별히 내려놓을 것 없이 맞이한 노년이다. 살아온 세월을 부정당하는 것 같은 자괴감은 있지만 오히려 홀가분하기는 하다. 내려놓을 것이 많이 있었다면 그만큼 미련도 컸으리라.


맞이하고 싶지 않은 노년이었지만 막상 받아들이고 나니 오히려 여유롭다, 젊은 날의 열정과 치열함이 부럽기는 하지만 여유와 혜안이 있고, 의무와 권리에서 놓여난 자유가 있다. 젊은 날이 어찌 화려하기만 하였으랴, 불확실한 미래와 헤쳐나가야 할 현실 앞에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에 매달려야 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이 쫓기듯 살아온 세월이었다.


골동품의 매력이 어찌 쓸모에만 있을 수 있을까? 지나온 세월을 담은 사연도 있고 켜켜이 쌓아 온 정도 있다, 박물관에 귀하게 보관된 골동품도 있고 고물상 쓰레기 장에 처박혀 있는 물건도 있다. 옥에 흙이 묻어 파묻혀 있어도 옥은 옥이다. 갈고닦아 본연의 가치를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박물관에서 만인이 우러러보는 명품 골동품도 좋지만 한 자신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골동품이 진짜가 아닐까?

의무와 책임을 내려놓았으니 이젠 내 자리를 찾아볼 일이다, 내려놓고 비우면 다른 것으로 채워지는 게 세상의 이치라 한다, 앞만 보고 살았던 젊은 날에 비해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는 노년이다.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혜도 있다. 변화하는 세상에 그대로 적응하기는 어렵지만 수용하려는 넉넉한 마음도 있다.


비웠으니 다시 시작해 보자, "나 때는 말이야····" 지나간 세월을 앞세우는 말부터 없애야 한다. 물은 거꾸로 흐를 수는 없는 법이다. 같이 흐르면서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는 건 오히려 축복이지 않을까?


노년, 이제부터 시작이다. 은퇴를 받아들이려 혼란스러었던 60대를 지나 아직은 건강한 몸과 마음일 때 노년의 황금기를 누려야 한다. 노후의 삶은 건강할 때와 건강을 잃었을 때로 구분할 수 있다. 자신의 힘으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건강한 노년기, 지금이 노년의 황금기이다.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찾아 볼 수 있다. 나이 든 나의 가치를 찾아볼 일이다. 나이 듦이 축복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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