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우정.
이 책을 몰입해서 읽지는 못 했다. 1944년 1월 28일 금요일 일기의 한 대목처럼, 비슷한 이야기를 "자꾸 되풀이해서 들려주는 바람에" 조금은 지루했다. 안네 프랑크의 나이가 내 딸아이와 비슷했더라면 그나마 마음을 다잡고 읽었을테지만, 안네는 중학생이요 내 딸아이는 유치원생이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읽었다. 왜냐면 이번 달 독서모임 '책으로20' 에서 고른 책이라서. 그리고 친구의 아들이 이 책을 좋아한다고해서.
안네 프랑크의 첫 일기는 1942년 6월 12일에 시작된다. 1929년 6월 12일에 태어났으니 중학교에 다니는 시기에 이 일기를 쓴 것이다. 첫 일기를 쓴 날짜를 보고 나는 잠시 생각했다. '내가 처음으로 일기를 쓴 건 언제였지?' 6학년 때 일기를 숙제로 내줘서 쓰긴 했는데, 지나간 신문의 일기예보를 참고하며 며칠씩 몰아서 썼다. '안네는 어쩜 이렇게 고차원의 단어를 구사했지?' 나는 당시 몰아 쓴 숙제를 내다버려 확인할 수도 없다.
1942년 7월 8일, 안네의 가족은 히틀러의 호위부대 SS로부터 소환장을 받는다. 가족은 곧바로 피란을 갔고, 좁고 열악한 공간에서 거의 2년을 다른 가족들과 지낸다. 안네가 마지막으로 일기를 쓴 날짜는 1944년 8월 1일이며, 그는 1945년 3월 어느 날 감염병으로 사망한다. 안네의 사망일이 정확하지 않은 건, 그와 그의 조상이 히틀러가 그토록 혐오했던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안네의 가족은 집단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을 했다.
안네 프랑크가 쓴 일기가 <안네의 일기>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이 일기를 쓴 안네 프랑크가 1942년 6월 20일에 기록한 다음 문장에 그 까닭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문제의 핵심에 도달했어. 내가 왜 일기를 쓰기 시작했나 하는 문제. 왜냐하면 난 아직 진정한 친구가 없기 때문이야."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을 하니 우리 우정의 토대가 더욱 든든해 진 기분이야. 너의 안네."
<안네의 일기>를 설렁설렁 읽은 지금, 나에게 몇 가지 숙제가 생겼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움직였으며, 히틀러라는 사람은 어떤 방법으로 권력을 잡았고, 또 히틀러에 동조한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행동을 했는지, 현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는 어떻게 얽혀있으며, 태극기 부대는 왜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광화문에 나오는지 등을 공부한 뒤에, 나는 <안네의 일기>를 다시 읽어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