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의 공부.
정치인 이낙연. 기자도 했고 국회의원도 했고 도지사도 했지만, 나는 그를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 기억하고 있다. 국회 대정부질문을 대하는 그의 자세는 늘 진지했고, 그의 언어는 늘 묵직했다. 문재인 정부 2년차이던 2018년 9월 13일, 당시 자유한국당 한 국회의원이 이렇게 물었다. "총리께서는 촛불혁명이라고 보십니까 촛불집회로 보십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비합법적인 수단'인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잡은 것이라 말하고 싶었지만, 이낙연 총리는 거기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답했다. "의원님께서 네 생각이 뭐냐 하문하셨기에 저의 졸렬한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낙연 총리가 긴 공직 생활을 마치고 미국 워싱턴 D.C.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지금, 그의 연설비서관이었던 이제이 작가가 쓴 2020년 작품 <어록으로 본 이낙연>을 읽었다. 이낙연의 어록 43개를 중심으로, 그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을 입체적으로 서술했고 이 말에 담긴 이낙연의 철학을 기술했다. 165쪽에 인쇄된 어록은 이렇다. "가까이 듣고 멀리 보겠습니다." 그가 도지사 시절이던 2015년 7월 1일 전남도청 정례조회 때 했던 말이고, 이 말의 의미는 이렇게 후술된다. "좌우명이 근청원견 近聽遠見, 즉 가까이 듣고 멀리 본다는 뜻입니다. 도민 여러분의 말씀을 가까이 듣고, 그 말씀을 정책에 반영할 때는 멀리 보면서 하겠습니다."
내가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하는 그의 어록은, 그가 2017년 12월 12일에 기고한 '나와 동아일보'라는 제목의 글 일부다. "진실을 알기는 몹시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종보다 오보가 나에게 더 깊은 교훈을 남겼다. 지금도 나는 진실에 신중하다." "말과 글은 알기 쉬워야 하며, 그러려면 평범하고 명료해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겼다. 김중배 편집국장은 논어의 술이부작 述而不作을 가르쳐 주셨다. 꾸미지 말고 있는 대로 쓰라는 뜻으로 들렸다. 이것을 나는 지금도 훈련한다."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터득했다. 인생과 자연의 비밀은 너무 많고, 세상의 변화는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일주일에 하루는 책을 읽으려 노력한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기간 동안, 나는 이낙연 총리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의 언어는 총리 시절에 비해 무뎌져 있었고, 무엇보다 품위와 격조가 예전보다 못 했다. 때로는 지지율 1위를 달리던 후보의 언어와 비슷해지기도 했고, 양측의 선거캠프 공보단은 그야말로 이전투구를 벌였다. 갈 때까지 간 더불어민주당과, 품격을 잃어버린 정치의 비열함을 보게 됐다. 허탈한 마음에 지지율 최하위 후보에게 투표를 했고, 본선에서도 한참을 망설이다 소수정당 후보 이름에 도장을 찍었다. 2022년 6월 지방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은 졌고, 이를 받아들이는 지도부의 언어는 초라하다못해 비천하기까지했다. 행정부와 입법부는 마비 상태다.
2022년 6월 7일, 이낙연 총리는 미국 워싱턴 D.C.로 향하며 출국인사를 했다. "오늘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갑니다. 체류기간은 1년으로 예정했습니다.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 있는 조지워싱턴대학 한국학연구소에서 방문연구원(Visiting Scholar) 자격으로 한반도 평화와 국제 정치를 공부하며, 관련인사들과도 교류할 계획입니다. 국내가 걱정스러운 시기에 떠나느냐고 나무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책임있는 분들이 잘해 주시리라 기대합니다. 국민의 상식과 정의감, 애국심과 역량이 길을 인도하리라 믿습니다. 저는 현재를 걱정하지만, 미래를 믿습니다. 강물은 휘어지고 굽이쳐도,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