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지학 爲己之學.
2022년 상반기가 열흘 남짓 남았다. 모레면 절기상 하지에 닿는다. 일 년 중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다는 날이니, 이제부터 연말 동지까지는 밤이 점점 길어지게된다. 밤이 길어지면 또 한 해가 저물게되는 것이니, 더 아쉽기 전에 상반기를 정리하고 평가해본다. 2022년 상반기는 내게 '독서모임 시작과 지속'의 기간이었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하기 위해 각기 다른 2개의 독서모임을 시작했고, 어제로써 상반기 모임을 마쳤다. 독서모임의 이름은 각각 '책으로20', '책으로1040'이며, '책으로20'은 스무살에 만난 친구와 매달 20일 경에 하는 모임이고, '책으로1040'은 10대와 40대 가족이 여러 이야기를 하는 모임이다.
'책으로20' 첫 모임은 2월 20일이었다. 함께 읽은 책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였고, 우리는 '어른'에 대해 '책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두 번째 책은 멜빌의 <모비딕>이었고, '일'에 대해 '집념'에 대해 생각을 나누었다. 세 번째 책은 카뮈의 <페스트>였고, 코로나에 확진된 이력을 가진 우리 두 사람은 '역병'의 시대에 살아가는 여러 방법을 논의했다. 네 번째 책은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이었고, '공부'에 대해 '나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 상반기 마지막 책은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였고, 다시 한번 '어른'에 대해 그리고 '꿈'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책으로20'은 '고전'에 속한 도서들을 주로 읽었고, 고전에서 지혜를 배우자는 모임이다.
'책으로1040' 첫 모임은 2월 12일이었다. 같이 읽은 책은 <강원국의 글쓰기>였고, 우리는 '잘 산다'는 것에 대해 '지식'과 '지성' 그리고 '지혜'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두 번째 책은 매클렌란 등이 쓴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였고, 찰스 다윈이 연구를 했던 방법과 우리를 감싸고 있는 불안에 대해 말했다. 세 번째 책은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였고, 망해가는 조직에 대해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봤다. 상반기 마지막 책은 크리츨로우의 <운명의 과학>이었고, 우리는 '기본기'에 대해 '말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책으로1040'은 '과학'에 속한 도서들을 주로 읽었고, 우리는 모임의 정체성을 차츰차츰 찾아가는 중이다.
독서모임을 하는 동안, 나는 가장 먼저 책임감을 배웠다. 함께 읽기로 한 책을 꼼꼼하게 읽는 것부터가 독서모임의 시작이었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책상 앞에 앉는 자체가 훈련이었다. 다음으로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 대화를 하려면 우선 잘 들어야하고, 이야기가 매끄럽게 이어질 수 있게 필요없는 말은 버려야한다. 그 다음으로 배움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책은 늘 그대로 있으나, 읽는 사람의 배경과 자세에 따라 다른 말을 건넨다. 배움의 출발은 언제나 겸손함이다. 마지막으로 현실에 대해 자각할 수 있었다. 독서모임을 지속하려면 돈을 꾸준히 벌어야한다. 책은 위대하나 밥보다 뛰어날 수는 없다. 몸을 잘 다스려 건강해야한다.
2022년 하반기 독서모임은 각각 '동양고전'과 '공부'로 방향을 잡았다. '책으로20'은 사마천의 <사기>를 읽는다. 그간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쓰고 그린 만화 <사기>를 함께 읽었고 그 깊이를 체감했다. 입문서에 익숙해지면 완역본을 천천히 읽을 계획이다. '책으로1040'은 한동일의 저작을 읽기로 했다. 8월에는 <한동일의 공부법>을 읽고, 9월에는 <믿는 인간에 대하여>를 읽는다. 10월부터 읽을 책은 이야기를 해나가면서 정하면 된다. 2022년 12월에는 독서모임 1년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함께 읽었던 책 가운데 기억에 남는 문장을 떠올려보며 한 해를 차분하게 마무리 할 계획이다. 배움의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위기지학 爲己之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