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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May 09. 2022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체르노빌의 목소리>.

악, 선이 없는 상태. 

1986년 4월 26일, 옛 소비에트 연방 우크라이나 어느 지역의 원자력 발전소에 사고가 났다. 어떤 원인으로 발전소가 폭발했고, 그 틈 사이로 방사능이 유출됐다. 발전소에서 일하던 노동자들과 지역 주민들이 방사능에 피폭됐다. 불을 끄러 간 소방관들과 군인들도 방사능에 노출됐다. 사람들은 죽어갔고 도시는 마비됐다. 소비에트 최고위 정부 기관이던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사건을 무마하려했다. 사고의 원인과 진행 상황을 주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방사능을 닦아내기위해 군인들과 공무원들을 사건 현장으로 무작정 보냈다. 우크라이나 표현으로는 '초르노빌', 러시아 언어로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라고 부르는 바로 그 사건이다. 


이 사건을 직접 겪은 이들의 몇 가지 증언을 들어보자.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사건을 현장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바로 체르노빌에서……." (…) "특별위원회가 우리를 만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남편, 아들 시신은 방사선 수치가 매우 높기에 드릴 수 없습니다. 모스크바의 묘지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매장할 것입니다. 밀폐된 아연 관에 안치해 콘크리트로 덮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서에 서명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이에 반대하거나 시신을 고향으로 가져가려는 사람이 있으면 꼭 아셔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사망자들은 국가의 영웅이기에, 시신은 절대 가족의 것이 아닙니다.' 이제 국가의 사람이었다. 국가의 소유였다."  


"신문은 우리의 영웅성에 대해 떠벌렸다. 영웅다운 젊은이라고, 선한 일을 행하는 콤소몰(공산 청년 동맹) 청년이라고!"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누구였을까? 우리가 무슨 일을 했는가? 나는 알고 싶다. 책으로 읽고 싶다. 내가 직접 거기 있었음에도 알 수 없다." (…) "서류에 서명하라고 했다. 기밀유지 계약이었다. 나는 침묵했다. 말해도 된다고 했다고 쳐도 누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제대하자마자 2급 장애인이 되었다. 스물 두 살이었다. 공장에서 일했다. 공장 사장이 말했다. '계속 아프면 자를 거야.' 결국 해고됐다. 사장을 찾아갔다. '이러실 수 없습니다. 저는 체르노빌에서 일했어요. 여러분을 구했다고요. 보호했다고요!"  


"아직도 '체르노빌레츠(체르노빌사람)'이라는 단어가 들리면 사람들은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거기서 왔대!' 처음에는 그런 기분이었다. 우리는 도시가 아니라 인생 전부를 잃어버렸다." (…) "내 아이들은 누구일까요? 어느 민족일까요? 우리는 다 섞였어요. 우리 피가 다 섞였어요. 나와 내 나이들의 신분증에는 러시아인이라고 쓰여 있지만, 우리는 러시아인이 아니에요. 우리는 소련인이에요! 하지만, 내가 태어났던 나라는 이제 없어요. 우리가 고향이라고 불렀던 곳도 사라졌고, 우리 고향이었던 시간도 이제 없어요." (…) "나라한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농사도 다 직접 지어. 그냥 건들지만 말면 좋겠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건을 몸소 겪은 이들이 남긴 증언록이다. 작가와 책의 독자들은 어떤 증언에 마음이 동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군인의 합창'이라는 제목이 달린 110쪽에서 131쪽까지의 진술에서 감정이 크게 동요됐다. 군인들은 국가에 의해 막 다루어졌다. 인권은 무시되거나 경시됐다.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고 존중받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체르노빌 사건은 흔히 하는 말로 인재人災이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산업재해를 당한 것이다. 책에 나온 이 말을 기억해야한다. "악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빛이 부재하면 어둠이 오는 것처럼 선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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