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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May 19. 2022

한동일, <라틴어 수업>.

"Dilige et fac quod vis"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에 이어, 한동일 신부가 쓴 <라틴어 수업>을 읽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페스트>에 나오는 조제프 그랑 Joseph Grand 이라는 인물이 라틴어를 열심히 공부한다길래 이 책을 골라 읽었다. 조제프 그랑은 시청 공무원이면서, 틈틈이 라틴어를 공부했다. 이웃들이 어떻게 사는지 관심을 가지면서, 진급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라틴어를 짬짬이 배우고 익혔다. 독서모임을 하는 친구와 이 조제프 그랑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 책 <라틴어 수업>이 문득 생각났고,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마음으로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먼저 '학문'의 의미를 이야기한 27쪽의 문장이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대학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양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틀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학문을 하는 틀이자 인간과 세상을 보는 틀을 세우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향후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고, 그것을 빼서 쓸 수 있도록 지식을 분류해 꽂을 책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73쪽의 문장도 격려와 자극이 되었다. "학생이 자발적으로 공부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학생의 개인적인 성장이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닙니다."


83쪽 문장에서는 '공부'를 대하는 자세 내지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겸손한 사람이 공부를 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겸손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실패의 경험에 대해 지나치게 좌절하고 비관하기 쉽습니다. 이것은 '실패한 나'가 '나'의 전부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건 자기 자신을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일종의 자만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한 번의 실패는 나의 수많은 부분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것 때문에 쉽게 좌절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못 이해한 겁니다."


고르는 게 쉽지 않았지만, 위로가 되었던 문장은 181쪽에 있었다. "하늘의 새를 보세요. 그 어떤 비둘기도 참새처럼 날지 않고, 종달새가 부엉이처럼 날지 않아요. 각자 저마다의 비행법과 날갯짓으로 하늘을 납니다. 인간도 같은 나이라 해서 모두 같은 일을 하지 않고 같은 방향으로 가지는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저마다의 걸음걸이가 있고 저마다의 날갯짓이 있어요. 나는 내 길을 가야하고 이때 중요한 것은 '어제의 자신 자신으로부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은 정확히 모르는 내 걸음의 속도와 몸짓을 파악해나가는 겁니다."


내가 <라틴어 수업>을 산 건 2018년 4월 9일이었다. 사놓고 눈에 확 들어오는 곳에 놓아두었지만, 이런이런 핑계를 대면서 안 읽다가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 시간동안 나는 일만 하는 짐승이 되어 있었다. 나 자신을 이해하는데 시간을 보내기보다, 회사의 이름값에 허우적대며 인생을 연명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 다르게 산다. 돈은 딱 먹고 사는데 필요한 만큼만 벌고,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며 즐겁게 살고자 한다. 상황이 변하면 마음가짐도 달라지겠지만, 내가 가진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내 길을 가려한다.


        Dilige et fac quod vis.

      딜리제 에트 팍 쿼드 비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

이 책을 읽고 생각난 책

1. 존 폴락, 홍종락 역, <사도 바울>, 홍성사, 2009

2. 대니얼 플린, 윤태준 역, <공부해서 남주다>, 유유, 2015

3. 승효상, <묵상>, 돌베개, 2019


이 책을 읽고 들었던 음악

1. 아르보 패르트 Arvo Pärt 'Spiegel im Spiegel', 1978.

2. 스팅 Sting, 'Shape of my heart', 1993.

3. 호르헤 드렉슬러 Jorge Drexler 'Al otro lado del rio',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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