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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May 22. 2022

권해진, <우리 동네 한의사>.

겸손한 전문직. 

우리 동네에는 '래소 한의원'이 있다. 집에서 나와 5분만 걸으면 도착하는, 동네 명소 교하도서관에서도 330m 거리에 있는 동네 한의원이다. 이 래소 한의원의 권해진 원장이 쓰고, 보리 출판사에서 2021년 5월에 펴낸 <우리 동네 한의사>를 3일에 걸쳐 천천히 읽었다. 현직 한의사가 쓴 책으로는 지윤채 푸른나무한의원 원장의 <불안 우울 강박 스스로 벗어나기>를 지난 주에 읽어본 적이 있는데, 지윤채 원장의 책이 '환자 스스로 심리적 증상을 다스릴 수 있게 하는 지침서'였다면, 권해진 원장의 책은 '환자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동네 한의사의 진료 일지'라고 할 수 있다. 다정한 이 책의 부제는 '마음까지 살펴드립니다'이다.


권해진 원장이 만난 동네 이웃들의 증상은 여러가지다. 감기, 비염, 월경, 설사, 비만, 유산, 치매부터 발바닥 통증, 발목 통증, 무릎 통증, 허리 통증, 어깨 통증, 산후 통증, 근육 통증 등 다양하다. 아토피, 중풍, 우울 증세도 있고 과민대장 증후군, 명절 증후군, 번아웃 증후군도 있다. 한의원인 만큼 기력을 보충하고 체질을 개선하고자 하는 동네 이웃들도 이 곳을 찾는다. 어떤 이웃은 자양강장을 위한 탕약을 받아가고, 어떤 이웃은 산후조리를 위한 한약을 지어간다. 수험생 가족은 총명탕을 지어가고, 직장인 가족은 쌍화탕을 받아간다. 한의원을 찾는 동네 이웃들은 자신의 증상을 이야기하고, 권해진 원장은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처방을 제시한다. 


환자들과의 대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인천에서 고등학교 1학년 아들과 함께 온 어느 아빠가 말했다. "원장님 글에 공부 잘하고 설사하는 아이요, 우리 집에는 공부 못하고 설사하는 애가 있어요." 아들의 기분을 살핀 권해진 원장이 답했다. "공부 잘하려다가 그런 걸 거예요. 글에 쓴 그 아이도 잘하려고 신경 쓰다 보니 장이 부글거리고 설사가 난 거거든요." 아빠가 웃으며 응했다. "아무도 상처받지 않게 말하는 방법을 배우신 것 같아요. 아내가 꼭 가 보고 싶은 한의원이라고 해서 억지로 끌려왔는데 오길 잘했네요. 아들을 다그치는 아내와 엄마 말을 안 들으려고 하는 아들 사이에서 제가 가장 힘들거든요."


권해진 원장이 자신의 직업을 대하는 태도 또한 사뭇 신선했다.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가 발목을 삐어서 왔다. "지금까지 차가운 찜질을 많이 했는데 그래서 더 안 낫는 걸까요? 하루 지나서 뜨거운 거 할 때 되면 또 삐어서 차가운 걸로 또 하고 했거든요." 이 말을 들은 권해진 원장이 이렇게 말했다. "발목에 급성 염좌와 만성 염좌가 섞여 있는 상태여서 앞으로는 따뜻한 찜질만 하는 것이 효과가 더 좋을 거야. 잘 모르겠으면 한의원으로 오렴. 때로는 의사나 한의사보다 아파 보고 나아 본 사람이 치료 효과나 방법에 대해서 더 잘 알 때가 있어. 자주 아픈 만큼 나아지는 요령도 잘 알게 될 거야. 반 아이들이 발목을 다치면 잘 도와주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이 푸근해졌던 문장은 권해진 원장의 다음 독백이었다. "환자가 증상을 이야기하는 동안 제 머릿속은 복잡합니다. 여러 병명을 떠올리고 그 가운데 '이거는 아니네', '이거는 가능성이 있네'하며 병을 골라내야 합니다. 저는 그런 복잡한 머릿속 생각들을 환자들에게 모두 설명하는 편입니다.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한 번에 병명을 말해야 노련한 의사로 보일 텐데 그게 잘 안 됩니다.)" 한의사라고 하면 통상 사회적으로 전문직에 속하는 직업이라 할 수 있고, 전문직들은 대개 스스로를 불가침의 영역에 속한 사람이라 여기는데, 이 문장에서는 그같은 호기가 없었다. '래소 한의원'의 '래소'는 '오면 소생한다'는 뜻이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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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을 읽고 생각난 책

이상우, <마음병에는 책을 지어드려요>, 남해의봄날, 2022


2. 이 책을 읽고 들었던 음악

엘튼 존 Elton John, 'Circle of life',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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