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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May 23. 2022

폴 코트라이트, <5.18 푸른 눈의 증인>.

80년 광주의 목격자. 

1980년 5월, 미국인 폴 코트라이트 Paul Courtright 는 전라도 나주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나이는 스물 여섯이었고, 미국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1979년부터 한센병 환자 정착촌인 호혜원에서 환자들을 돕고 있었다. 그는 예상치 못한 일로 5월 광주에 휘말렸고, 그때 자신이 보고 듣고 기록한 바를 40년 만에 책으로 묶어냈다. 제목은 <5.18 푸른 눈의 증인>이며, 원제는 <Witnessing Gwangju : A Memoir>이다. 


5월 18일 일요일 오후, 코트라이트는 호혜원 자신의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건강검진 목적으로 전날까지 서울에 머무르고 있었던 코트라이트는, 하루종일 등산을 하고 음악을 들으며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이웃 한 명이 그를 찾아와 어둡고 긴장한 기색으로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 뉴스 들었어요? 광주에서 데모가 있었대요. 오늘 광주에 심각한 일이 생긴 것 같아요. 광주에 가는 건 위험할 것 같아요."


5월 19일, 코트라이트는 호혜원 환자들과 전라도 순천으로 향했다. 노르웨이 출신 미아 토플 박사가 운영하는 안과 전문 병원이 순천에 있었는데, 나주에서 순천으로 가려면 도로 여건상 광주를 꼭 거쳐야했다. 광주터미널에서 순천행 버스에 막 탑승한 순간,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군인들이 사람을 죽이네! 사람을 죽여!" 한 청년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공수부대원들의 진압봉에 맞아 쓰러져 있었다.


이 책은 폴 코트라이트 박사의 '80년 광주 회고록'이다. 5월 14일 수요일부터 5월 26일 월요일까지, 13일 동안 그가 보고 듣고 느낀 80년 광주를 묘사한 기록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노트와 편지, 다른 자료들을 꺼내 이 책을 쓰기까지 거의 사십년이 걸린 이유가 무엇일까? 많은 변명거리가 있지만 무엇보다 광주를 기억하는 자체가 내게 큰 고통이었고, 내 삶을 계속해 나가고 싶었다." 


5월 20일, 광주 도심에서 한 할머니가 코트라이트에게 말했다. "자네 미국인인가?" "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봤나?" "네, 너무 안됐습니다." "그런 위로는 나중에 하고, 지금 자네는 우리의 목소리가 되어 주어야 하네. 한국 사람들은 지금 목소리를 낼 수 없네. 세상 사람들은 이 나라 군인들이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모르고 있어. 당신이 증인이 되어 우리를 대변해 주게. 바깥세상 사람들에게 우리의 사정을 알려 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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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생각난 책

구광렬,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실천문학사, 2009


이 책을 읽고 들었던 음악

제임스 테일러 James Taylor, 'Up on the roof',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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