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序詩.
아침 공부로 故 신영복 선생의 <담론>을 읽다가 돌아가신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읽게 됐다. <담론>에 소개된 대목은 이렇게 시작된다. "초등학생들과 시 암송 모임을 하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비싼 과외 못하는 애들을 모아 놓고 시를 암송하는 공부 모임입니다. 그 중 한 아이의 학교 소풍 때였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앞에 나와서 각기 장기자랑을 하는 순서였습니다. 다른 애들은 나와서 유행가도 부르고 유명 그룹의 춤도 멋지게 흉내 내는 등 화려한 장기자랑을 펼쳐 보였습니다. 그 아이 차례가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시 암송 모임에서 공부한 윤동주 尹東柱의 '서시'를 암송했다고 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놀랍게도 그것이 그날을 석권했음을 물론이고 그 후 그 가난한 아이가 일약 스타가 되었다고 합니다. 시가 없어지는 세월 속에서 우리가 시를 멋지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친구들 앞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시를 읊어나간 그 어린이는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윤동주의 '서시 序詩'는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서가에 꽂힌 윤동주 시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꺼내어 '서시'를 천천히 읽어봤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20." 면지에 적어둔 책 구입 날짜를 보니 2016년 2월 23일이다. 일을 마치고 선배와 함께 김포공항 롯데시네마에 들러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를 본 후, 이 책을 주문했다.
시 읽는 즐거움에 김이경 작가가 쓴 <시의 문장들> 한 구절도 다시 읽어봤다. "우주학자 마틴 리스가 말하기를,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란다. 그러니까 막 따지고 들어가면, 나도 당신도 모두 별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단 얘기다. 그래서일까, 저녁 하늘에 반짝이는 총총한 별을 보면 그리운 애인인 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시 구절이 따오르고, 평소에는 먼지만도 못하게 여겼던 나도 당신도 한없이 그리워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다." 故 김광섭 시인의 작품 '저녁에'를 읽은 작가의 감상이다.
장마가 시작되는 여름날 아침에 옛 기억들을 떠올리니 사라졌던 윤기가 가슴에 돈다. 중학교 3학년 때, 국어 교사에게 빨간색 몽둥이로 맞아가며 암기했었던, 지금은 거의 다 잊어버린 故 정지용 시인의 '향수'도 생각난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박인수 성악가와 故 이동원 가객이 함께 부른, 아름다운 가곡 '향수'의 부드러운 선율도 머릿속을 계속 맴돈다. 시를 무시로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