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양저 열전 司馬穰苴 列傳.
아빠가 군인이었다는 건 네게 얘기했었지?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아빠 역시 군복을 입은 시민이었다. 군인의 본분은 나라를 위한 헌신이고 군인의 덕목은 명령에 대한 복종이겠지만, 아빠는 그렇게 헌신도 하지 않았고 복종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군역을 마쳤다. 함께 땀을 흘린 동기들과 동료들에 대한 애정은 있었지만, 아빠가 체험한 군대는 순리대로 흐르지 않는 강물이었다. 몇몇 훌륭한 상관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외 다수는 부하들 사기 진작은 나몰라라 하는 해바라기들이었다. 오늘 읽을 <사마양저 열전>은 군인에 관한 이야기다.
'사마양저司馬穰苴'의 본명은 '전양저田穰苴'이다. 그는 춘추시대 제나라 사람으로, <관안 열전>에서 소개한 안영과 동시대에 살았던 군인이었다. 사마천이 안영을 소개했던 대목을 잠시 돌이켜볼까? "안영은 제나라 영공, 장공, 경공을 섬겼으며 절약과 검소함을 힘써 실행하여 제나라에서 중용되었다." 사람은 그의 친구를 보면 안다고 하는데, "절약과 검소함"이 몸에 밴 안영이 경공에게 사마양저를 천거했다고 하니 그의 성품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되지?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다시 한번 춘추시대 연도를 생각해보자. B.C. 770~403.
<사마양저 열전>의 두 번째 문단을 읽어볼까? 안영이 경공에게 '전양저'를 천거하면서 하는 말이다. "양저는 비록 전씨의 서출이지만 그의 글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무예는 적군을 위협할 만하니, 원컨대 군왕께서 그를 시험해 보십시오." 여기서 서출이란 '첩이 낳은 자식'을 말하는데, 이 당시에는 '첩'이라는 단어도 '서출'이라는 단어도 여러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말이었다. 우리는 다만 안영의 표현 "그의 글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무예는 적군을 위협할 만하니"에만 주목하자. 중요한 건 능력과 성품이다.
경공은 안영의 추천을 받아 '전양저'를 장군으로 삼았지만, 문제는 그의 출신이었다. 전양저는 말했다. "신은 본래 미천한 신분인데, 군왕께서 이러한 저를 백성 가운데서 뽑아 대부의 윗자리에 두셨습니다. [그러나] 병졸들은 복종하지 않고 백성은 믿지 않으니, 저는 권세가 미미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바라건대 군왕께서 총애하고 온 백성이 존경하는 신하를 감군(군대의 감찰관)으로 삼으면 될 것입니다." 경공은 장가莊賈를 감군으로 삼았고, (사마천의 표현대로) '교만한' 장가는 전양저와의 약속을 우습게 여겼다.
그 약속은 다름 아닌 '시간 약속'이었다. 언제 몇 시에 만나자는 단순한 약속이었지만 장가는 그 시간에 술을 마시고 있었고, 군령을 중시하는 전양저는 군법에 따라 그의 목을 베었다. 전양저는 그후 부하들의 사기 진작과 기강 확립에도 공을 들였고, 용병술도 탁월하여 전투에서 연승을 했다. 경공은 그에게 '군사 업무를 책임진다'는 뜻의 '사마司馬' 직에 임명했고, 그를 "존중하여 (오늘날 국방부장관에 해당하는) 대사마大司馬로 삼았다." 문무를 겸비했고 덕망 또한 높았던 사마양저는 그후 "제나라에서 나날이 더욱 존경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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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 이후로, 대한민국 근현대 시기 장준하 선생 이후로 문무를 겸비한 군인을 본 적이 없다. 다음 시간에는 <손자 오기 열전>을 천천히 읽어 보자.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