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 보지 않고는 절대 모르는 설움".
아동문학가 권정생 (1937 ~2007). 식민지 시기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해방 이듬 해 고국으로 귀국한 사람, 전쟁으로 분단된 나라에서 가난과 병마로 평생을 시름한 사람, 1955년에 썼던 <여선생>을 시작으로 <강아지똥>, <몽실언니>, <한티재 하늘> 등의 소설과 <우리들의 하느님> 같은 산문을 집필한 사람,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한 사람. 이 권정생 선생을 다룬 이충렬 작가의 2018년 작품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을 며칠동안 읽었다.
권정생의 문학관을 잘 알 수 있는 1973년 1월 30일 편지의 일부를 바로 읽어보자. "체험하지 않고, 겪어 보지 않고는 절대 모르는 설움을 무엇 때문에 외면하면서 설익은 재롱만으로 문학을 한다는 것부터,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문학은 한낱 번들번들한 재주가 아닌 쓰라린 경험과 체험에서 시작되고 끝난다는 권정생의 말에서,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참된 문학과 그 문학을 있게 해준 이 세상 모든 희로애락을 생각해본다. 기쁘고 즐거운 일은 화나고 슬픈 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화나고 슬픈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가.
훗날 <초가집이 있던 마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권정생 전쟁 3부작'의 출발 작품인 <초가삼간 우리 집>과 드라마로도 제작된 전쟁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인 <몽실 언니>의 잡지 연재를 마치고 나서, 권정생은 모 신문사와의 1985년 12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문학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름다운 인간성과 소외된 생명의 존엄성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으면서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찾자는 의미와 더불어, 조국 분단의 슬픔과 통일에 대한 염원도 작품 안에 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체험과 경험은 유효했다.
2005년 5월 1일, 권정생은 죽음을 예감하며 유언장을 작성했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 만약에 죽은 뒤 환생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도 있을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고통과 전쟁은 여전한 것이었다.
기후위기를 말하던 2022년 7월, 나는 권정생 선생의 작품을 처음 읽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그해 초 <애국자가 없는 세상>이라는 책을 알게 됐고, 그 여운이 오래 남아 작가의 이름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던 차였다. 찌는 해를 피할 목적으로 아내와 딸아이와 함께 동네 도서관을 찾았고, 그곳에서 드디어 그 유명한 <강아지똥>을 읽게 됐다. 그후 <엄마 까투리>, <강아지와 염소 새끼> 같은 그림책으로 선생의 문학을 조금 더 살펴볼 수 있었고 아침 저녁으로 찬 바람이 부는 가을날, 마침내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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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고통이 끊이지 않는 2022년에, 이미 돌아가신 권정생 선생의 명복을 빌며, 아울러 좋은 문장으로 선생을 소개해준 이충렬 작가께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