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리영희, 정연주.
한 번씩 언론인들의 말이 생각날 때가 있다. 기개가 필요할 때, 공부가 안 될 때, 마음이 흐려졌을 때 특히 그렇다. 대한민국에 훌륭한 언론인들은 많이 있다. 현장에서 여전히 치열하게 활동하는 언론인들도 많다. 기레기니 너절리스트니 같은 멸칭이 있는 것도 알지만, 그런 비칭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과 권력이 모였던 모든 곳에 있었으니 특별히 요즘 언론 환경만 두고 자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여전히 제대로 된 언론인은 있다.
언론인 장준하 (1918 ~ 1975). 오늘은 그의 항일대장정을 다룬 <돌베개>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 가능하다면 꼭 일군 항공대에 지원하고 싶습니다. 일군 항공대에 들어간다면 충칭 폭격을 자원, 이 임정 청사에 폭탄을 던지고 싶습니다. 왜냐구요? 선생님들은 왜놈들에게 받은 서러움을 다 잊으셨단 말씀입니까? 그 설욕의 뜻이 아직 불타고 있다면 어떻게 임정이 이렇게 네 당, 내 당 하고 겨누고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까?"
언론인 리영희 (1929 ~ 2010). 오늘은 그의 자전 대담집 <대화>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톨스토이가 종교와 인간의 문제에 관한 의미심장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을 그의 글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서, 그 사람이 기독교 신자냐 아니냐를 묻기 전에 그 사람이 도덕적이냐 아니냐를 알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이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한다면, 기독교 신자냐 아니냐 하는 것은 물을 필요가 없다."
언론인 정연주 (1946 ~ ). 오늘은 그의 워싱턴 비망록 <서울-워싱턴-평양>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자유니 진리니 정의니 그런 따위의 말이 언제 한번 이 역사에서 제대로 피어본 일이 있는가. 설쳐 봐야 결국은 힘이 강한 보수가 이기는 것이다. 너희들 극소수의 잘난 체하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패배의 쓴맛을 볼 뿐이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나는 종종 당신들로부터 들어 왔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냉소주의의 발톱입니다."
장준하, 리영희, 정연주. 이 3명의 언론인들은 2022년에도 효용이 있을까? 이 3명 언론인들의 말과 글은 여전히 쓰임이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각자의 시대에서 시대의 고민을 끝까지 붙잡고 시대의 가치를 끝까지 탐구했다. 2022년은 어떤 시대일까? 정치가 사라진 시대다. 정치가 종말된 시대다. 다 됐고 뻔뻔하면 되는 시대다. 옳은 것들이 사라진 시대에 언론을 무엇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