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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의 마지막날이다. 시간은 빨리 흘러가고 딸아이는 훌쩍 커져 있다. 뱃살은 빠지지 않는데 때가 되기만 하면 허기가 진다. 시간은 가지런히 흐르지 않는다는 걸 올해 들어 더욱 실감하고 있다. 11월 독서는 들쭉날쭉했다.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이후 한동안 책을 잡지 못했다. 11월 중순이 되어서야 겨우 안정이 되어 꾸역꾸역 읽고 쓰는 일을 이어갔지만 놓쳐버린 책들이 너무나 많다.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11월에 읽으려고 한 책은 모두 4권이었다. 이 가운데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과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를 읽었고, <소크라테스, 민주주의를 캐묻다>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읽지 못했다. 유발 하라리의 책은 10월에 이어 연속으로 읽지를 못했는데, 두꺼운 책을 계속 미루다가 포기한 것 말고는 달리 변명할 게 없다. 나무 의사 우종영 선생의 책은 놀라웠다. 내가 꾸준히 하고 싶은 분야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프리랜서 외신 기자 라파엘 라시드의 <우리가 보지 못한 대한민국>과 임시제본소 강민선 대표의 에세이 <하는 사람의 관점>, 영화 <괴물>의 시나리오와 조선 후기 이덕무 선생을 다룬 어린이책 몇 권은 11월에 계획하지 않았으나 읽게 된 책이다. 이 가운데 <하는 사람의 관점>이 특별히 인상 깊었고, 덕분에 또 다른 기획 거리가 생겨 며칠동안 꽤 행복했다. 이덕무 선생의 생애와 그림책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이었다.
12월에는 딱 3권을 골랐다. <넛지> 전면 개정판이 '파이널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나왔길래 구입해 놓았고, 혜화1117 출판사 이현화 대표가 2019년에 쓴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와 인디 팝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의 미셸 자우너가 2021년에 쓴 소설 <H마트에서 울다>를 목록에 추가했다. 연말연초가 되면 생각나는 몇몇 출판사의 책들도 꺼내놓기는 했지만, 12월에는 이 3권만 우선적으로 읽고 정리해 볼 생각이다.
2022년 마지막달에는 한 해의 독서도 정리해야 한다. 지난 주에 정리한 '올해 읽고 리뷰를 쓴 도서 목록'은 기초 자료에 지나지 않고, 초서록과 플래너를 읽으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22년을 매듭지어야 한다. 성과와 한계가 뚜렷했던 한 해였고, 이상과 현실이 선명했던 한 해였다. 대설은 12월 7일이고 동지는 12월 22일이다. 선친 기일도 12월에 있고 그 외 여러 의미있는 날들도 12월에 있다. 더욱 꾸준한 한 달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