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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Nov 28. 2022

봉준호 · 하준원 · 백철현, <괴물>.

영화의 시작, 시나리오. 

2006년에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시나리오를 읽었다. 2022년 11월 19일 토요일에 <봉준호, 장르가 되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어쩌다가 보게 됐고, 스트리밍이 끝난 후 감독의 시나리오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동네 도서관에 들러 냉큼 빌려왔다. 감독의 첫 장편영화인 2000년 작품 <플란다스의 개>와 두 번째 장편영화인 2003년 작품 <살인의 추억>에 해당하는 시나리오는 소장되어 있지 않았고, 2020년 2월 이후에 출간된 비평가들의 평론집들이 여러 권 있었다. 2020년 2월은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휩쓴 달이다.


<괴물>의 시나리오는 영화와는 조금씩 달랐다. 영화 초반, "끝까지 둔해 빠진 새끼들, 잘 살어들"이라는 짧은 말을 남기고 다리 밑으로 투신하는 윤사장은 시나리오보다 말 수가 적었다. 영화 후반, 뇌 수술을 마친 강두를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야, 얌마"라고 속삭였던 인질 간호사의 대사는 시나리오에는 보이지 않았다. 시나리오와 영화 사이의 이 자그마한 간격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바로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감독의 치열한 고민과, 더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소통했던 배우들과 스텝 간의 긴밀한 대화를 의미한다.


<괴물>의 시나리오는 영화와 거의 비슷했다. 영화 첫 장면인 "주한 미8군 용산기지 내 영안실"을 나타내는 자막과, 수채구멍으로 부어져 빈 병이 된 포름알데히드 더미를 비추는 카메라 팬은 시나리오와 동일했다. 윤사장이 한강으로 뛰어내리기 전에 어둡고 스산한 한강을 직부감으로 보여주는 장면 또한 시나리오에 그대로 적혀 있었다. 시나리오와 영화 사이의 이 긴밀함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바로 명확한 설계도가 감독의 손 안에 들어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 참여자 모두가 짐작할 수 있는 지도가 눈 앞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나리오를 손에 들고 자신의 연기를 고민했을 배우들의 모습을 머리 속으로 그려보는 것 또한 이번 독서의 큰 재미였다. 희봉에게 청구할 금액의 견적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간이영수증을 채워나간 흥신소 직원은 어떤 모습을 연기에 담아내려 했을까? 비가 내리퍼붓던 날, 검정색 판초 우의를 입은 채 강두 가족에게 리베이트를 요구했던 구청 조과장은 촬영장에서 어떤 고민을 했을까? 남일의 머리통에 소주병을 내리치며 "이게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나?"라며 혀를 찼던 복개도로 밑의 노숙자는 관객들에게 어떤 표정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시나리오를 다 읽고 영화 <괴물>의 엔딩 크레딧을 유심히 살펴봤다. 단역들 이름 외에도, 자신의 일을 묵묵히 했을 제작진들의 역할이 쭉 올라갔다. "괴물디자인, 컴퓨터 그래픽스, 조명, 윤색, 스크립터, 코디네이터, 발전차, 소품, 매니저" 등 조명을 받지는 못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역할들이 무수히 올라가고 사라졌다. 좋은 작품은 저절로 만들어 지지 않는다. 좋은 작품은 참여자들이 함께 할 때 비로소 만들어 진다. 그리고 좋은 작품의 시작은 예나 지금이나 좋은 시나리오다. 시나리오 공저자 3명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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