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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Dec 30. 2021

김영화, <만화 동사의 맛>.

과장 없이 넉넉한 그림. 

이 책의 탄생 배경은 이렇다. 김영화 작가가 서점에 갔다. 《동사의 맛》을 읽었다. 글이 살아 움직였다.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그림을 그려 출판사에 보냈다. 출판사는 원작자에게 그림을 보냈다. 원작자 김정선 작가는 “마음이 따듯해졌다.” “무엇보다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과장 없이 둥글게 이어지며 속 깊은 표정까지 넉넉히 표현해 내는 그림.”(p.211) 《만화 동사의 맛》이 나왔다.


《동사의 맛》은 공부책이다. 동사를 공부하는 국어책이다. 동사는 ‘사물의 동작이나 작용을 나타내는 품사’다. 김정선 작가는 “20년 넘도록 잡지와 단행본의 문장을 다듬어 온 전문 교정자”다. 20년 경험을 《동사의 맛》에 녹여냈다. 공부책인데 소설같다. 인물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서점 구석에 모로 앉아 읽기 시작한 《동사의 맛》”은 김영화 작가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p.10)


내가 《만화 동사의 맛》에서 얽어매인 문장은 이거다. 동사의 기본형이 족쇄같다고 느낀 남자가 말한다. “하지만 사람에게 기본형이란 족쇄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잖아요. 실제의 나를 얽어매고 옭아매는 그런 것들 따위는…”(p.176) 여자가 제안한다. “그럼 이건 어때요? 동사의 기본형은 족쇄다. 고로 활용형이 존재한다.” (p.177) “기본형이 사람의 몸이라면 활용형은 각양각색의 의상이나 작업복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p.179)


‘빨다’와 ‘빨다리다’를 설명한 꼭지는 백미다. “빨래는 빨아서 꼭 짠 뒤에 널고 마르면 걷어서 다린다. 빠는 게 먼저고 짜는 게 다음이며 빨랫줄에 너는 게 그다음이고 말라서 물기가 사라지면 걷고 다리는 게 마지막이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한 번에 표현할 수 있는 동사가 있다. 빨다리다. (~을) 빨아서 다리다.” (p.189) 그래, 나는 빨지도 않아놓고 다린 옷만 기다린 것이다.


이 책은 작중 인물이 도서관에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여자는 “쉰을 코앞에 두고 삶의 태도는 물론 정신도 가다듬”으며 “이제까지 살면서 벌여 놓은 것들 또한 간추”(p.17)리고 싶었다. 국어사전을 뒤적이며 동사를 정리했다. 시간은 흘렀고 여자는 안경을 썼다. “이제 나도 도서관을 떠날 때가 된 것 같다.”(p.209) “어두운 창밖에 눈이”(p.206) 내렸다. 첫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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