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지면서 계속 사는 삶의 숭고함"
처절한 제목이다.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 부제는 더 처절하다. "시나리오에서 소설까지 생계형 작가의 글쓰기". 내가 읽어본 책 가운데 박민규 작가의 2003년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이후 가장 처연한 제목이다. 제목부터 표정이 막 일그러진다. 굽어버린 목뼈와 틀려버린 등뼈와 초조한 얼굴과 긴장한 얼굴이 마구 떠오른다. 책날개에 소개된 김호연 작가의 이력은 이렇다. "작가 지망생, 시나리오 작가, 만화 스토리 작가, 퇴근 후 작가, 생계형 작가, 공모전 헌터, 소설가를 거쳐 현재 전업 작가로 살고 있다."
김호연 작가의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다. 그가 2013년부터 2년 주기로 출간한 장편소설의 제목은 <망원동 브라더스>(2013), <연적>(2015), <고스트 라이터스>(2017), <파우스터>(2019)이며, 이 책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를 2020년에 펴낸 이후, 이듬해에 <불편한 편의점>을, 2022년에 <불편한 편의점>2권을 각각 썼다고 하니, 정말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쓴 것이다. 역시 책날개에 인쇄된 이 책의 '톤 앤 매너는' 이렇다. "한 청년이 무언가를 지망하고 그것으로 생계를 해결하여 업을 이루기까지 해야 했던 기록".
내가 이 책에서 배운 글쓰는 사람의 태도를 요약한다. 그들은 우선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하루에 적어도 A4 1장은 쓰고 많으면 A4 3장을 쓴다. 쓰지 않을 때는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한다. 다음으로 체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목과 허리가 버텨줄 수 있게 매일 걷고 여유가 되면 뛰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려고 노력한다. 생계 유지를 위해 돈을 벌고, 쓰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돈을 벌고, 쓰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돈을 번다. 그리고 그들은 남의 일을 하면서도 내 일을 하기 위해 나만의 이야기를 꾸준히 만든다.
이 책은 또한 김호연 작가가 만나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생맥주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대학 동기 '매직'은 작가 지망생 시절 <명감독 백대일>의 시나리오를 그와 함께 썼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라는 소설을 쓴 서진 작가는 그에게 늘 '빈말이 없는 사람'이다. 소설은 자고로 독자에게 궁금증을 유발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전해준 노 샘은 그에게 늘 한결같은 선배이자 멘토이자 친구였다. 영화 <공공의 적> 강철중 캐릭터를 만들어낸 '시불파' 형들과, 영화 <괴물>의 시나리오를 작업한 백철현 작가도 그가 만나온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은 문장 몇 개를 옮긴다. 12쪽 프롤로그 중, "모든 초고는 쓰레기였고, 쓰기는 고쳐 쓰기였으며, 작품의 완성이란 불가능하고 마감에 맞춰 작업을 멈출 뿐이었다. 사는 것 역시 비슷했다. 우리는 어제를 고쳐 오늘을 살고 오늘을 고쳐 내일이란 시간을 쓴다. 매일 지면서 계속 사는 삶의 숭고함에 비하면 글쓰기의 실패는 미미한 일과에 지나지 않았다." 5장 175쪽 중, "결국 모르니까 할 수 있는 거다. 인생은 알 수 없기에, 살아 봐야 알기에 버틸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좋은 책을 읽은 덕분에 12월의 출발이 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