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적인 습관.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 485쪽에 이런 문장이 있다. "다윈은 카드놀이와 사냥을 즐기는 중간 수준의 학생이었지만 자연학에 대한 관심에 이끌려 케임브리지의 저명한 교수인 식물학자 존 헨슬로, 지질학자 애덤 세지윅과 접촉했다. 다윈은 1831년에 22세의 나이로 학위를 받았다. 그는 여전히 성직자가 되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상 그의 운명은 확고한 신념의 부재 때문에 결정되었다. 다윈은 졸업 직후 남아메리카 지도 제작을 목표로 2년간의 항해를 떠나는 영국 해군함 비글호에 자연학자로서 탑승할 기회를 얻었다."
2022년 3월에 읽은 이 문장에서 나는 이 표현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확고한 신념의 부재', '확고한 신념의 부재'. 지금에야 다윈이 <종의 기원>을 썼고 인류사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다윈은 정처없이 떠도는 별 볼 일 없는 사내였다는 말이다. 그랬던 그가 "자연과학자를 넘어 인류사의 사고체계에 일대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가져다준 위대한 사상가 다윈"이 되었고, 경기도 파주시에 살고 있는 한 40대 남자가 그의 책을 읽을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되어 있다. 뭣 때문에? '확고한 신념의 부재' 때문에.
다윈의 부친은 의사였다. 다윈의 조부도 의사였다. 다윈도 의사가 되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의학을 공부했지만 사람의 피를 보는 게 두려워 중도에 길을 멈췄고 신학으로 진로를 틀었다. 신학에는 흥미를 느꼈지만 이번에는 확고한 신앙이 없었다는 게 큰 문제였다. 신이 있는 지 없는 지도 모르는데, 신을 관찰한 적도 없는데 신학을 공부해서 직업으로 먹고 산다는 게 까마득한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다윈은 자기가 좋아하던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식물을 관찰했고 곤충을 관찰했고 동물을 관찰했고, 산책을 했고 낚시를 했고 사냥을 했다.
22살 나이에 탑승한 비글호는 다윈에게 큰 전환이 되었다.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 85쪽에 이런 문장이 있다. "비글호 항해는 내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내 인생의 진로 전체를 결정지어준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이 항해로 내 정신 고양의 첫 관문을 통과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연사의 다양한 분야를 면밀히 관찰할 계기를 얻게 된 것이고, 그래서 이미 어느 정도 길러져 있던 내 관찰력은 이 항해를 통해 한껏 향상될 수 있었다." 다윈은 이 항해를 통해 책에서 본 것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두 손으로 직접 만져봤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배웠다. ① 좋아하는 걸 꾸준히 하자. ② 사람을 잘 만나자. 다윈은 이렇게 말했다. "규칙적인 습관은 특정한 작업을 하는 동안 많은 도움이 되었다." 또한 다윈은 자신이 존경할 만한 사람에게서는 무엇이라도 배우려고 했다. 식물학자 헨즐로에게서는 "사물을 오랫동안 꼼꼼하게 관찰한 끝에 결론을 끌어내는 것"을 배웠고, 지질학자 라이엘에게서는 "명징함과 신중함, 건전한 판단력과 풍부한 독창성"을 배웠다. 이 짧디 짧은 대가의 자서전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두 가지 중요한 잔기술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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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 附記
1.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를 읽고 나서 찰스 다윈의 생애가 궁금해 동네 도서관 어린이 열람실에서 다음 책을 읽었다. ① 루스 애슈비 <세상 모든 곳을 탐험한 소년, 찰스 다윈>. ② 샌드라 마클 글, 지나 손더즈 그림, <찰스 다윈 : 세상의 비밀을 밝힌 항해>. 두 권 모두 수작이다.
2.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에 편지 몇 통이 소개되어있다. 그 가운데 ① 다윈이 아버지에게 비글호 탑승 허락을 구하는 편지, ② 다윈의 외삼촌이 자신의 매제에게 조카의 비글호 탑승을 응원하는 편지, ③ 다윈의 아내 엠마가 자신의 남편에게 허심탄회하게 쓴 편지가 참으로 명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