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시작하며.
딸아, 아빠가 《사기》라는 역사책을 읽기 시작했다. 가족 서재 책상에 놓여 있는 두 권 짜리 두꺼운 책을 기억하니? 그래, 아빠가 요즘 틈틈이 읽고 있는 그 책 맞다. 이 《사기》를 읽기 위해 그간 몇 권의 참고서를 거쳤고, 이제 준비가 다 된 것 같아 마침내 통독을 시작한다. 독서는 네가 좋아하는 아빠 친구와 함께 하기로 했다. 혼자 하기에는 아빠 의지가 너무 약하기도 하고, 함께 하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하여 몇 번의 논의 끝에 결행을 했다. 그리고 오늘, 아빠는 네게 한 가지 작은 약속을 하려고 한다. 아빠가 이 책을 이해한 만큼 네게 설명해 보겠다고.
먼저 이 책을 쓴 '사마천'이라는 인물에 대해 한번 알아볼까? 사마천은 기원전 145년에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났다. 중국이 어디냐고?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바로 왼쪽에 있는 나라이다. 그가 태어났을 때 중국은 '한漢'이라는 이름의 나라였고, 그의 조상은 대대로 역사와 천문을 연구했던 '태사령太史令'이었다. 사마천 역시 그의 아버지 사마담의 유언대로 한 왕조의 태사령이 되었고, 기원전 104년 무렵부터 이 《사기》를 쓰기 시작해 기원전 93년 경에 비로소 집필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기원전 98년에는, 끔찍하고 비참한 궁형을 당하게 된다.
'궁형'이 뭐냐고? '거세형'이라고도 부르는 형벌로, 남자의 소중한 부위를 자르는 잔인한 벌이다. 왜 궁형을 받았냐고? 기원전 99년에 한漢나라는 흉노와 전쟁을 벌였는데, 이 전투에서 '이릉'이라는 장수가 지휘하던 부대가 적군에게 무참히 패하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조정의 신하들은 하나같이 패장을 비난하기 시작했고, 오로지 사마천 한 사람만이 이릉 장군을 강력히 변호하기 시작했다. 사마천이 보기에 군세 자체가 균형이 맞지 않는 중과부적衆寡不敵의 상태였는데도, 조정의 신하들은 황제의 노여움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사마천을 모함했던 것이다.
궁형을 받았음에도 사마천은 왜 《사기》를 계속 써내려갔을까? 크게 3가지 이유가 있었다. 너무 분통하고 억울하여 그 울분을 터트리고 싶었고, 선친의 유지를 이어받아 나라가 흥망성쇠 하는 원인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고자 했으며, 이를 완성하여 사마천 자신과 집안의 이름을 후대 역사에 대대로 남기려 했다. 그렇게 사마천은 그 울분과 고통을 참고 또 참으며 총 52만 6500자에 이르는 130편의 대작을 완성했고, 이는 12편의 본기, 10편의 표, 8편의 서, 30편의 세가, 70편의 열전 순으로 엮여져 2,1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계속 읽혀지고 있다.
딸아, 아빠가 왜 네게 《사기》를 설명하겠다는 약속을 혼자서 했을까? 아빠 역시 3가지 이유를 억지로 들어보겠다. 먼저, 네게 설명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읽어야 이 길고 어려운 책을 그나마 붙잡고 있을 것 같다. 다음, 이번 공부를 바탕으로 아빠와 우리 가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사기》라는 동양고전을 읽고 정리함으로써 말과 글을 제대로 사용하는 훈련을 하고자 한다. 이제 막 한글을 익히고 있는 네게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약속인가 싶다만, 뭐 어떠냐? 공부가 되고 재미만 있으면 그걸로 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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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번에 읽어줄 이야기는 《사기》 전체의 머리말에 해당하는 〈태사공자서〉이다. 아빠를 계속 응원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