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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Aug 01. 2023

딸에게 다시 읽어주는 《사기 열전》 33.

경포 열전 黥布 列傳.

오늘 우리가 읽을 이야기는 《사기 열전》의 31번째 편인 〈경포 열전〉이다. 시대는 바로 앞의 이야기인 〈위표 팽월 열전〉처럼 '진말한초秦末漢初'이고, 시황제가 앉았던 그 권좌를 차지하기 위한 여러 호걸들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소멸하는 시기이다. 이 시대를 다룬 소설로는 《초한지》가 널리 알려져 있고 춘추전국시대 전체를 이야기한 책으로는 《동주 열국지》가 있다는 것도 알아둘까? 복습하자면, 춘추전국시대는 서주西周가 멸망하고 동주東周가 일어선 기원전 770년 이후부터 시황제가 중국을 평정하는 기원전 221년까지를 말한다.  


〈경포 열전〉의 주인공은 경포黥布이다. 첫 문단을 한번 읽어보자. "경포는 성은 영씨이고 진나라 때는 서민이었다. 젊었을 때 어떤 사람이 그의 관상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형벌을 받고 나서야 왕이 되겠군.' (영포가 장년이 되고 어떤 일로 다른 사람의 죄에) 연루되어 [얼굴에 먹물을 들이는] 경형黥刑을 받게 되자, 경포는 너무 기뻐 웃으면서 말했다. '어떤 사람이 내 관상을 보고 형벌을 받고 나서야 왕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을 말한 거겠지.' 이 말을 들은 사람은 모두 경포를 놀리며 비웃었다." 경포는 정말 왕이 되고 싶었나보다.


계속 읽어보자. "경포는 판결을 받고 여산으로 보내졌다. 여산에는 형벌을 받은 죄수가 수십만 명 있었는데, 경포는 그 죄수들의 우두머리나 호걸들과 사귀었다. 그런 뒤에 그 사람들을 이끌고 강수 부근으로 달아나서 떼를 지어 도둑질을 일삼았다." 경포는 이후 초나라 항우의 휘하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전적을 쌓게 된다. 사마천의 문장은 이렇다. "초나라 군대는 늘 진나라 군대를 이겨 제후들 가운데 공이 으뜸이었다. 제후들의 군대가 모두 초나라에 귀속하게 된 것은 영포가 적은 병력으로 진나라의 대군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경포가 초나라 항우 밑에서 공을 쌓고 있을 때 한고조 유방이 꾀를 내어 경포를 한나라로 귀순케 했다. 경포를 얻은 유방은 세력이 더 커졌고 한나라의 영역도 더욱 넓어졌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유방이 휘하 군사들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염려해 그들을 하나 둘 죽이기 시작한 것이다. 회음후 한신의 목을 베었고, 팽월을 가마솥에 삶아 죽인 다음 소금에 절였다. 사마천의 다음 문장을 읽어볼까? "(유방은) 소금에 절인 살덩이를 그릇에 담아 제후들에게 두루 내려주었다." 회남 지역의 왕이었던 경포는 이 살덩이를 보고 몹시 두려워하여 제 목숨을 지키기 위해 유방을 칠 계획을 짜게 된다. 


경포는 어떻게 되었을까? 유방에 의해 처참히 죽었다. 사마천은 〈경포 열전〉을 집필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그가 내린 평가를 함께 읽어보자. "항우가 구덩이에 파묻어 죽인 사람은 1000만 명이나 되지만, 영포는 늘 가장 포악한 일을 하는 자의 우두머리였고 공적은 제후들 가운데 으뜸이었다. 그래서 왕이 될 수는 있었지만 자신도 세상의 큰 치욕을 피하지는 못했다." 경포는 싸움을 잘 했다. 전투가 벌어지면 늘 선봉에 섰다. 초나라에서는 당연히 영웅이었다. 권력이 바뀌자 영웅은 역적이 되었고 '경포黥布'라는 이름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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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 附記

 

1. 우리는 어떤 이름을 남길 수 있을까? 이름을 남길 수는 있기나 할까? 평범하게 조용히 살다가 이름 없이 조용히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아빠는 아빠 인생을 살고, 너는 네 인생을 살아라. 다만, 우리 모두 죄는 짓지 말자.


2. 공훈과 원혼이 왔다갔다 하는 전국시대 군인의 삶에 대해서는 《사기 열전》의 13번째 이야기인 〈백기 왕전 열전〉에 잘 묘사되어 있다. 아빠는 이 이야기들을 읽으며 한국전쟁 당시 소년병들의 삶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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