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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Aug 05. 2023

딸에게 다시 읽어주는 《사기 열전》 34.

회음후 열전 淮陰侯 列傳.

〈회음후 열전〉의 주인공은 기원전 196년에 사망한 한신韓信이다. 한나라 유방劉邦, 초나라 항우項羽와 함께 당대를 주름 잡았던 인물이자 유방에게도 항우에게도 꼭 필요했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하기도 했던 사람이 한신이다. 항우의 밑에 있던 무섭武涉이라는 사람이 당시 제나라의 임시 왕으로 있던 한신에게 했던 말을 읽어보는 것으로 오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지금 한왕과 항왕 두 사람의 싸움에서 [승리의 저울추는]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당신이 오른쪽으로 추를 던지면 한왕이 이기고 왼쪽으로 추를 던지면 항왕이 이길 것입니다."


그럼 〈회음후 열전〉 첫 문단을 읽어볼까? "회음후淮陰侯 한신은 회음 사람이다. 처음 벼슬하지 않았을 때에는 가난한 데다 방종했으므로 추천 받아 관리도 될 수 없었고, 또 장사를 해서 살아갈 능력도 없어 늘 남을 따라다니며 먹고 살아 사람들이 대부분 그를 싫어했다. 일찍이 정장의 집에서 여러 번 얻어먹은 일이 있었다. 몇 달이 지나자 정장의 아내는 한신을 귀찮게 여겨, 새벽에 밥을 지어 이불 속에서 먹어 치우고는 식사 시간에 맞춰 한신이 가도 밥을 차려 주지 않았다. 한신도 그 뜻을 알고는 화가 나서 마침내 발길을 끊었다." 


정신을 차린 한신에게 먼저 손을 내민 쪽은 항우였다. 그렇지만 한신은 항우 밑에 오래 있지 못했다. 초나라에서 한나라로 귀의한 한신이 한 고조 유방에게 했던 말을 읽어보자. "신이 일찍이 그를 섬긴 적이 있으므로 항왕의 사람됨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항왕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공손하고 자애로우며 말씨가 부드럽습니다. 그러나 부리는 사람이 공을 세워 벼슬을 주어야 할 경우가 되면 인장이 닳아 깨질 때까지 만지작거리며 차마 내주지 못했습니다. 항왕은 우두머리로 불리고 있지만 실제로는 천하 사람들에게 마음을 잃었습니다." 


한신은 한나라로 옮긴 후 공을 착착 쌓아갔다. 전투에서 이겨 대장이 됐고 땅을 넓혀 좌승상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배수진을 쳐서 적군을 물리친 일화도 한신의 용병술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앞서 소개한 무섭의 말을 다시 한번 들어볼까? "유방의 뜻은 온 천하를 삼켜 버리지 않고서는 쉬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한왕은 믿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한신이 세력을 넓혀 제나라의 왕이 되었을 때 '괴통'이라는 자가 한신에게 유방의 탐욕을 경계하라고 했지만 한신은 끝내 그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유방에게 목이 베이게 된다.


자, 〈회음후 열전〉을 요약 평가한 사마천의 마지막 문장을 읽어보자. "만약 한신이 도리를 배워 겸양한 태도로 자기 공로를 뽐내지 않고 자기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다면 한나라에 대한 공훈은 주공, 소공, 태공망 등에 비할 수 있고 후세에 사당에서 제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되려고 힘쓰지 않고 천하가 이미 안정된 뒤에 반역을 꾀했으니 온 집안이 멸망한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사마천은 〈회음후 열전〉을 쓰기 위해 한신의 고향을 둘러보며 '도리'와 '겸양'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 글의 도입부에서는 '가난'과 '방종'을 이야기했었다. 


**

만약 한신이 가난하지 않았고, 가난하지 않아서 도리와 겸양을 제대로 배워 방종하지 않았더라면 멸문지화를 당하지 않았을까? 글쎄, 역사에 가정이 있을까? 사람의 일생에 가정이라는 게 필요할까? 아빠 생각은 이렇다. '인간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주어진 조건이 있고, 다만 그 조건 속에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질 뿐이다.' 


다음 시간에는 《사기 열전》의 33번째 이야기인 〈한신 노관 열전〉을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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