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는 법.
카피 쓰는 법을 배우려고 <카피 쓰는 법>을 읽었다. 이 책을 쓴 이유미 작가는 29CM라는 회사에서 9년간 "헤드 카피라이터로" 일했고, 지금은 경기도 안양시에서 밑줄서점이라는 "작은 서점을 운영하며 손님이 오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은 글을 쓰며 지낸다"고 한다. 카피 작성을 다룬 책으로는 정철의 <카피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이유미 작가의 <카피 쓰는 법>을 읽어보니 두 작품의 특징이 명확이 구별된다. 정철의 책은 잠시 확 밝았다가 사라지는 혜성이고, 이유미 작가의 책은 늘 뱃사람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북극성이다.
<카피 쓰는 법>은 먼저 구성부터 차분하다. 총 5부로 짜여진 작품에서, 카피 쓰는 법을 본격적으로 말하는 장면은 마지막장에 잠깐 나오고, 1장에서 4장까지는 카피를 쓰기 위한 자세와 기본기만 가득하다. 1장 앞에 붙어있는 '들어가는 글' 역시 흔들림 없이 침착하다. "이 책 <카피 쓰는 법>은 카피를 쓰는 자세와 기본기를 설명합니다. 기본이 탄탄하면 자연스레 응용도 잘하기 마련입니다. 이 책을 펼쳐 읽다 보면 우리 일상 곳곳에 숨어 당신에게 속삭이고 있던 한 줄 한 줄이 카피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될 거예요."
이유미 작가에게 "카피를 쓰는 자세와 기본기"는 바로, '공감'이다. 특별한 기술이나 기교가 아니다. 67쪽 한 문장을 보자. "카피 쓰는 사람은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다채로운 삶을 읽어 내고 글로 옮길 줄 알아야 합니다." 힘을 쫙 뺀 47쪽 문장은 더욱 힘이 있다. "가만 보니 이게 전부인 것 같아요. (…) 카피를 쓰는 목적은 고객의 불편을 해소하는데 있으므로 카피라이터는 고객이 겪는 문제를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 결국 카피의 목적은 소비자에게 개선안을 제시해 소비자를 설득하는 것입니다."
<카피 쓰는 법>을 읽다보면 이유미 작가가 수집한 좋은 문장들도 덤으로 볼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인용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작가 스티븐 킹의 "아마추어가 영감을 기다릴 때 프로는 일하러 간다.",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어디서 가져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가져가느냐가 중요하다." 등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는 문장들이 책 군데군데 놓여있다. "뚜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연필 자국이 낫다"는 문장은 가히 압권이다.
카피 쓰는 법을 배우려고 <카피 쓰는 법>을 읽었는데,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빈도보다 밀도를 챙겨야 해요. 사람들이 깊이 공감하는 콘텐츠는 일상에서 나옵니다." 내게 없는 것을 가지려 하기보다, 내게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배웠다. "여러분의 작은 경험을 그냥 흘려보내지 마세요. 누군가는 그 소소한 경험에 공감하니까요." "더불어 타인의 작업물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것도 중요해요. 길바닥에 떨어져 있어 무심코 밟고 지나간 전단지의 한 줄 카피도 누군가 밤새 고민한 흔적일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