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율의 독서 Apr 01. 2022

조제 조르즈 레트리아, <전쟁>.

전쟁은 침묵이다.

"

전쟁은 빠르게 퍼지는 질병처럼 일상을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전쟁은 듣지 않고, 보지 않고, 느끼지 않는다.

전쟁은 늘 누가 두려워하고 어디에서 기다리는지 알고 있다.

전쟁은 온갖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전쟁은 증오와 야심과 악을 먹고 자란다.

전쟁은 무고한 사람들의 평온한 잠을 침범한다.

전쟁은 모든 사악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전쟁은 어떤 이야기도 용납하지 않는다.

전쟁은 슬프게 하고, 짓밟고, 침묵하게 한다.

전쟁은 고통의 기계, 온갖 분노를 만드는 사악한 공장이다.

전쟁은 차갑고 그늘진 아이들을 만들어 낸다.

전쟁은 불타오르는 영광을 꿈꾼다.

전쟁은 단언컨대 고난에 처한 우리 운명이다.

전쟁은 기꺼이 파멸을 지배한다.

전쟁은 죽음의 궁극적인 은신처이며

전쟁은 휘몰아치는 혼돈이며

전쟁은 침묵이다.

"


17행의 짧은 글에서 전쟁을 상상한다. 전쟁을 기획한 자와, 기획하지도 않았는데 앉아서 당하는 피란민들을 생각한다. 전쟁을 직접적으로 겪었던  조부모 세대와, 전쟁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부모 세대를 떠올린다. 전쟁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눈은 부들부들 떨렸다. 전쟁을 말하는 그들의 입은 이어지지 않고 툭툭 끊겼다


투퀴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모든 악의 근원은 탐욕과 야심에서 비롯된 권력욕이었으며, 일단 투쟁이 시작되면 이것이 광신 행위를 부추겼다." 전쟁을 기획한 자의 눈은 깊고 검다. 그 눈을 따르는 자의 말은 짧고 짧다. 전쟁은 "난폭한 교사"이자, "잔혹한 교사"라고 투퀴디데스는 말한다.


조제 조르즈 레트리아 José Jorge Letria 가 쓰고 안드레 레트리아 André Letria 가 그린 <전쟁 A Guerra>은 처음부터 끝까지 흐리고 어둡다. 전쟁을 겪지 않은 내가 피란민들에 공감하는 건 어렵고 불가능하다. 동네책방에서 산 <전쟁>을 읽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내와 딸아이에게 웃으며 말을 거는 것 말고는 없다.



작가의 이전글 이유미, <카피 쓰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