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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Apr 19. 2022

앤서니 브라운, <우리 아빠가 최고야>.

딸에게. 

딸에게. 


딸아, 유치원에서 재밌게 놀고 있느냐. 아빠는 집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다. 주말에 고생 많았다. 아빠도 오늘에서야 여독이 조금 풀리는 것 같다. 도로 위에서, 하늘 위에서 시간을 보낸다는게 마냥 신나는 일은 아니다. 결혼식이라는 행사가 한정 없이 행복한 시간만은 아니다. 집 나가면 고생이고, 격식을 갖추는 자리는 그 자체로 힘들기 마련이다. 며칠동안 애썼다. 바뀐 잠자리에 적응하느라, 낯선 사람들을 마주하느라 피곤했을 것이다. 즐거운 자리에서 네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상하고 슬펐을 것이다. 괜찮다. 그 자체로 너는 아름다웠다


딸아, 아빠는 어제 <우리 아빠가 최고야>라는 책을 읽었다. 그래, 너와 함께 읽었던 그 책 맞다. 아빠가 두 손가락으로 입을 쭉 찢으며 바보처럼 웃고 있는 그 그림책 맞다. 아빠가 오른손은 허리춤에 두고, 왼손은 험상궂은 늑대를 가리키며 호통을 치고 있는 그 그림책 맞다. 아빠가 이 책을 왜 또 읽었냐고? '아빠'라는 단어가 자꾸 생각났다. '아빠'라는 존재가 계속 맴돌았다. 결혼식 때 네 이모를 바라보며, 아빠는 이 세상의 모든 아빠들을 생각했다. 봄날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 거친 세상의 모든 아빠들을 생각했다.


딸아, 미안하지만 아빠들이 만든 세상은 그리 안전하지 않다. 도로 위에 자동차는 너무 빨리 다닌다. 오토바이는 더 빨리 다닌다. 왜 그렇게 빨리 다니냐고? 빨리 가지 않으면 돈을 못 번다. 빨리 가지 않으면 빨리 오라고 자꾸 전화가 온다. 돈을 못 벌면 밥을 못 먹는다. 빨리 오라는 전화를 자꾸 받으면 마음은 계속 초조해진다. 밥을 못 먹을 걱정을 하니, 그런 전화를 받을 생각을 하니 자꾸 빨리 다니는 것이다. 조금만 천천히 가도 되는데, 이 세상은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이 세상에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계속 쓰여지고있다. 


딸아, 2014년 4월 16일에 큰 사고가 있었다.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언니 오빠들이 바다 위에서 사고가 났다. 사고 때문에 제주도에 도착하지 못했고, 제주도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놀지 못했고, 제주도에서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했다. 왜 사고가 났냐고? 이 세상이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네가 조금 컸다고 마구 뛰어다닐 때, 아빠는 가슴이 철렁하다. 집은 안전하지만 밖은 그렇지 않다. 밖은 통제가 불가능하고 장악할 수 없는 공간이다. 아빠가 늘 네 곁에 있을 수도 없다.  


딸아, 아빠는 너보다 키가 크고 힘이 세다. 너는 글자를 읽지 못하지만 아빠는 읽을 줄 안다. 네가 보기에는 아빠가 최고 같겠지만, 사실 아빠도 무서운 게 많다. 늑대도 사실 무섭고 깜깜한 밤도 무섭다. 너를 지켜야하니까 용기를 내는 것이다. 아빠는 네가 밝게 자라기를 바란다. 네가 좋아하는 것을 잘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아빠는 네게 품을 내어주는 캥거루도 되어야겠지만, 네 목덜미를 물어 낭떠러지에서 떨어트리는 사자도 되어야한다. 그리고 부탁한다. 아빠보다 먼저 세상을 뜨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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