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도 없고 나도 없다

취향을 잃어 버리는게 위험한 이유

by 메즐러

요즘 난 음악은 유튜브 뮤직을 통해 듣는다. 나쁘지 않다. 가끔 조금 아쉬울 때가 있긴 하지만 들을 만한 노래들이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간간히 '오 좋은데?' 하는 노래들도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제목을 기억하거나 가수가 누군지 찾아 보지는 않는다.


집에서는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를 주로 본다. 나의 선택과 와이프의 선택이 섞여 있는 다양한 선택지 안에서 요즘 뭐 볼꺼 없나 하면서 컨텐츠들을 뒤적뒤적 하다가 조금 끌리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기 시작하고 대부분 끝까지 보지 않는다. 영화를 보기 전의 설렘도 없고, 솔직히 재미도 없다.


어제도 알고리즘이 틀어주는 노래를 들으며 집에 와서 치킨과 함께 넷플릭스가 추천하는 영화들을 뒤적거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취향이 뭐지?"


들을 음악도 알고리즘이 찾아주고, 볼 영화도 알고리즘이 골라준다.

참 편안하다.


그런데 요즘 듣는 좋아하는 노래도 관심있는 가수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개봉을 기다리는 영화도 없고 좋아하는 감독도 생각나지 않는다.




우리의 본성은 항상 편하려고 하는데, 막상 본성대로 편하게 하면 우린 상당한 불편감을 결국 겪게된다.

움직이지 않아 근육은 빠지고, 뱃살은 늘어나서 다양한 만성 질환들이 생기는게 된다.

온갖 관절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약해져 다양한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며, 결국 움직이고자 해도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이런게 편안하려는 본성을 마냥 추종하면 겪게 되는 현상이다.


즉 계속해서 편안하려면, 우리는 어느정도의 불편감은 감수해야 된다.


그런데 알고리즘이 주는 편안함 속에서 내가 찾아보고 선택하는 불편함을 나도 모르게 오랜 시간 피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보고 선택하고, 그리고 그걸 즐기면서 때로는 실망하고 가끔은 만족하는 경험들이 쌓여 취향을 만든다.

그리고 취향들은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는 하나의 큰 축이 된다.


수많은 자극적인 컨텐츠와 이것들을 추천해주는 알고리즘이 있는 지금, 편안하고자 선택을 위탁해 취향을 잃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소비하게 될 컨텐츠들은 나의 의식의 한편을 차지하게 될 텐데, 그렇게 되면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와 같은 선택을 할까?



조금은 불편해져야 겠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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