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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유기 Apr 17. 2024

빼앗긴 한입에도 봄은 오는가

“나 한입만 먹어봐도 되지?”

먹어보라 대답하기도 전에 제일 커다란 돈가스 조각을 포크로 쿡 찍어간다. 내 이럴 줄 알았다. ‘한입 도둑’이라 악명 높은 그녀가 먹을 걸 앞에 두고 그냥 넘어갈 리 없다. 결혼식이 한 달밖에 안 남았다며 다이어트한답시고 혼자 샐러드 시킬 땐 언제고. 자기 샐러드도 먹어보란 얘기는 일언반구도 없다. 한입은 절대로 한입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맛만 보겠다면서 후배 직원들 돈가스를 하나씩 다 찔러본다. 빼앗긴 이들은 떨떠름한 눈빛으로 입맛을 다신다. 그녀가 한입씩 먹은 조각을 다 합치면 왕돈가스가 될 거다. 튀김 부스러기를 덕지덕지 붙인 채 신나게 오물거리는 모습이 얄밉다. 입맛이 뚝 떨어진다.


석연찮은 점심 후 사무실로 돌아오니 메신저 알림이 울린다. 돈가스를 빼앗긴 희생자 동지들이다.

‘10분 뒤 은밀히 탕비실 집합. 한입 근절 대책회의’

비밀리에 모인 우리는 저마다 눈 뜨고 코 베인 사연을 털어놓았다. 같이 전복 삼계탕 먹으러 가서 한입으로 전복을 가져가더라, 모둠 초밥 먹을 땐 제일 비싼 참치 뱃살을 집어가더라, 캐러멜마키아토 한 모금만 달라더니 휘핑크림을 왕창 삼켜서 그냥 커피우유가 되어버렸다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피해가 막심했다. 더는 선배랍시고 당하기만 할 수는 없다. 모두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행동할 시간이다.


다음날 점심, 우리는 치밀하게 준비한 작전을 시작했다. 첫 번째는 회유다. 애초에 샐러드 따위가 아닌 충분한 양의 메뉴를 시키게 설득하면 남의 음식을 탐낼 일도 없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웨딩드레스 입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샐러드를 고집했다. 다급해진 우리는 마음에도 없는 아부를 퍼부었다. 이미 날씬하고 예쁜데 무슨 다이어트냐며 머릿수 맞춰 넉넉히 시키자고 구슬렸다. 하지만 그녀는 완고했다. 끝내 또 풀떼기를 주문한다. 회유는 처절하게 실패했다.


좌절할 틈도 없이 우리는 두 번째 작전을 실시했다. 한입 달라고 할 때 바로 거절하는 것이다. 예상대로 그녀는 음식이 나오자마자 한입만을 외쳤다. 타깃이 된 동지는 용기 내어 말했다. 한입이 두 입 되고 한 공기 뚝딱 한다고. 다이어트하는 중이랬으니 한입도 주지 않겠다고.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 완곡하면서도 확실한 의사 표현이었다. 문제는 그 거절이 그녀에게 아무런 타격감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작 한입인데 뭘 그러냐며 들은 척도 안 한다. 맛만 보는 건 살로 가지 않는다는 기적의 논리를 펼쳤다. 그녀는 초승달처럼 가느다란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깔깔거린다.

“그리고 한입만 먹을 때가 제일 맛있잖아!”


패배감이 우리를 짓누른다. 완전히 퇴로가 막혔다. 남은 건 이판사판이다. 나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젓가락을 꽉 쥐었다. 비장하게 그녀 앞 샐러드를 향해 팔을 뻗었다. 드레싱이 가장 많이 묻어있는 부분으로 크게 집어 입안에 구겨 넣었다. 그녀의 면전에 채즙을 팡팡 튀기며 똑같이 깔깔거렸다.

“선배님 말대로 한입만 먹으니까 진짜 맛있네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내 의도를 눈치챈 동지들이 뒤이어 그녀의 샐러드로 진격했다. 너도나도 한입만을 내지르며 진탕 먹어버렸다. 접시의 반이 금세 휑해졌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그녀의 동공이 흔들렸다. 후배들이 자기가 한 말 그대로, 행동 그대로 따라 한 것뿐이니 성질을 부리지도 못한다. 얼마 없는 풀떼기만 겨우 휘적거린다. 인제야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이다.


꼭 지금처럼 남의 인생 접시에서 뭐라도 하나 슬쩍 가져오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모아 한 접시를 만들어도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 그녀는 알고 있을까? 알 수 없기에 한입의 유혹은 언제나 강렬하다. 그 강렬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내 입안에 샐러드의 풋풋함이 진동했다.


식당을 나서자 오랜만에 느껴보는 포만감이 밀려왔다.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은, 내 몫을 온전히 먹었을 때의 기쁨은 이런 것이었다. 잃었던 한입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란히 선 동지들의 눈가에도 이슬이 반짝인다. 마침내, 봄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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