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보쌈집에서 먹은 점심값은 인당 17,800원씩 보내주시면 됩니다.”
엄청난 계산 속도다. 영수증에 찍힌 숫자를 보자마자 각자 내야 할 금액을 암산해 낸다. 정산은 역시 ‘알파고 대리’라 불리는 그의 몫이다. 그는 숫자와 관련된 건 모두 잘했다. 단순한 점심값 분배부터 업무의 손익을 따지는 것까지 막힘이 없었다. 나처럼 핸드폰 계산기나 엑셀에 의존하지 않고도 정확하게 답을 냈다. 저런 아들을 낳은 부모님께서는 얼마나 뿌듯할까. 나로선 다시 태어나도 따라 할 수 없는 능력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수학 공부를 포기한, 이른바 ‘수포자’였다. 학창 시절 내내 수학이라면 치를 떨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분수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길이 아님을 깨달았으니, 적성을 꽤나 빨리 발견한 편이라 볼 수도 있겠다. 중학교 때는 어머니가 학교에 불려 온 적도 있었다. 수학 성적이 평균에 미치지 못했다는 이유다. 그날 어머니가 제일 많이 들은 말은 “심각합니다”였다. 인수분해 좀 못했을 뿐인데 담임 선생님은 앞으로의 내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진 양 말했다. 다행히 우리 어머니는 크게 개의치 않으셨다. 돈 계산, 시간 계산만 잘하면 사는 데 아무 지장 없다며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셨다. 덤덤한 격려 덕분에 수포자임에도 이렇게 밥벌이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랐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어머니 말마따나 돈 계산은 철저히 했다. 나눠먹은 점심값을 송금하고 알파고 대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려는데 그의 자리가 비어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알파고란 별명답게 늘 정석대로 행동하던 그가 이렇게 말없이 자리를 오래 비운 적은 없었다.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참 울린 끝에야 그가 수화기를 들었다. 왠지 모르게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어디냐 묻자 그는 아까 점심을 먹었던 보쌈집에 와있다고 했다. 밥값 계산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수화기 너머로 싸움이 난 듯 격양된 목소리가 오가더니 전화가 뚝 끊겼다. 상황이 단단히 꼬였구나 싶어 황급히 보쌈집으로 향했다.
눈앞의 현장은 진흙탕 싸움이 따로 없었다. 알파고 대리와 보쌈집 사장이 서로 멱살을 잡고 있었다. 발단은 녹두전이었다. 보쌈과 곁들일 녹두전을 한 접시만 주문했는데, 두 접시 가격으로 계산되었다는 것이다. 사장은 죄송하다며 환불해 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과만으로 알파고 대리의 거북한 속을 풀어주긴 역부족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똑바로 계산해야지 왜 괜히 헛걸음하게 만들었다며 역정을 토했다. 아버지뻘 나이로 보이는 보쌈집 사장에게 반말과 삿대질도 서슴지 않았다. 내가 알던 알파고 대리가 맞나 싶었다. 매사에 정확하긴 했지만 그렇게 무례히 구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음식값을 철저히 따지려 드는 게 그답다고 생각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결국 사장은 모조리 환불해 줄 테니 다시는 우리 가게에 오지 말라 언성을 높였다. 왠지 모르게 나는 손님을 내쫓는 사장의 마음에 공감 가기 시작했다.
알파고 대리는 가게 밖으로 끌려나가면서도 분을 삭이지 못했다. 몇 천 원 차이 가지고 그렇게 따질 필요는 없지 않았냐 물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계산 하나도 똑바로 못하는 장사꾼들은 확실히 교육해야 한다며 단호히 대답했다. 실수라고 봐줬다간 몇 천 원이 몇 만 원으로 불어나는 건 시간문제라는 거였다. 자신의 멱살잡이는 그저 틀린 걸 바로잡기 위한 정당방위일 뿐이라 했다. 그의 얘기를 들을수록 껄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는 스스로를 상수(常數)로 정의하고 있었다. 변하지 않는 수, 항상 성립하는 불변의 진리값 정도로 말이다. 변수(變數)는 허용하지 않았다. 자신이 곧 답이었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지금 그보다 더 인간적일 것이다.
수포자였던 나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담임 선생님은 어머니를 앉혀놓고 내게 누적된 학습 결손이 의심된다고 했다. 어릴 때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 같은 사칙계산을 제대로 익히지 못해 이후 새로운 문제를 풀 때마다 막힌다는 뜻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런 결손이 누적되면서 수학을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수학에만 한정된 개념은 아닌 것 같다. 사람의 됨됨이도 오랜 누적의 결과물이다.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느라 타인의 말과 행동은 모두 오답으로 여겼다. 인간관계에 필요한 배려나 이해는 몸에 밸 틈도 없이 고갈되어 갔다. 메마른 인격엔 무례만이 남았다. 비상한 그의 두뇌도 이렇게 뒤틀린 마음까지 계산해 내진 못한 모양이다.
이후 알파고 대리와의 점심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밥값을 나누다 또 무슨 일이 터질까 마음을 졸였다. 말 한마디라도 잘못했다간 내 멱살을 잡으러 달려들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가 수를 헤아리는 일만 잘했다면 나는 전처럼 그를 대단히 여겼으리라. 하지만 그에게 계산이란 자신 말고는 모두를 오답으로 치부하는 것이었다. 그런 능력이라면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차라리 계산이 버거워 누군가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나의 정답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게 나았다. 결손으로 겸손을 알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배움이 아닐까. 아무래도 나는 역시 수학을 포기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