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닭 모가지도 이거 보단 튼튼할 거다. 이번에 심은 고구마 모종 상태가 영 안 좋다. 물이 부족한가 싶어 매일같이 흥건히 물을 주고, 비료가 부족한가 싶어 달걀껍데기까지 곱게 갈아다 뿌려줬다. 그런데도 불어 터진 국수처럼 흐물흐물 맥을 못 췄다. 다른 집 밭 고구마는 잘만 크는데 얘넨 왜 이 모양인지. 취업준비생 시절의 나는 한참 고구마에 눈이 돌아가 있었다.
뜬금없이 고구마를 심게 된 건 고향집으로 내려오면서부터였다. 동서남북 분주하게 이력서를 던졌건만 종무소식. 대학 졸업 후 변변한 직업 한번 가져보지 못하고 길거리에 나앉을 처지가 됐다. 결국 먼저 말문을 연 건 부모님이셨다. 당신들은 갈수록 주름살이 깊어 가는데 사대육신 멀쩡한 자식은 시간만 좀먹고 있으니. 속으로는 한심한 놈이라고 혀를 차셨겠지만 서울로 대학 간 자식새끼 자존심 생각해서 입 밖으로 내진 못하셨다. 대신 큰집 가서 일손 좀 보태라는 말로 달래신 거다. 못 이기는 척하긴 했지만 내심 다행이었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막막한 현실을 잠시나마 외면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데 왜 내 자리는 하나도 없을까, 난 얼마나 무가치한 걸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이 조금이라도 무뎌지길 바랐다.
쉬어가는 셈 치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뭐라도 밥값 하는 시늉은 해야 했다. 그래서 자투리 밭에 고구마를 심기로 한 거다. 병충해도 적고 심어만 놓으면 혼자 잘 자란다니 물만 좀 주면 옆밭처럼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완전히 뿌리내리려면 며칠 걸린다기에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이게 일주일이 넘어가도 여전히 뿌리를 못 내린 채 깔딱 고개였다. 비리비리 시든 고구마가 지금 내 처지 같아 더 짜증이 났다. 안 되는 놈은 뭘 해도 안 되는 걸까? 게다가 망한 농사에 쐐기를 박으려는 듯 한동안 비바람이 퍼부었다. 그 탓에 며칠간 고구마를 살피러 갈 수가 없었다. 시들고 찢긴 모습을 볼까 봐 밭에 가기 두려웠던 까닭도 있었지만 말이다. 결국 일주일도 더 지나서야 밭으로 나갔다. 죽은 모종을 거두고 밭을 갈아엎을 참이었다. 큰아버지도 고구마는 파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셨는지 말없이 괭이를 들고 따라나서셨다.
그렇게 터덜터덜 밭에 도착하자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내가 남의 밭에 와있는 줄 알았다. 축 늘어져있던 고구마들이 다 살아난 것이다. 어느새 뿌리를 내린 건지 푸른 줄기가 빳빳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개중 키가 제법 자란 것들은 이파리 사이에 연보랏빛 망울을 안고 있었다. 큰아버지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이고, 비키 봐라. 여기 고구마 꽃 맺혔구먼! 원래 고구마는 꽃 잘 안 피는데 웬일이여. 어지간히 맥 못 춘다 싶더니 꽃까지 피우려고 제대로 뿌리내리느라 오래 걸렸나벼. 니 고구마 농사 엔간치 잘 될라나보다.”
묘한 희열과 안도감이 뒤섞여 밀려왔다. 내색하진 않아도 유독 더뎠던 뿌리내림이 얼마나 초초하고 불안했는지. 지금껏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나처럼 무의미한 존재가 돼 버릴까 봐 두려웠다. 아마 난 성취감에 목말라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기분을 걸 느껴본 게 도대체 언제였나 기억조차 안 났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고구마에 내 모습을 투영하며 바라보게 된 것이다.
고구마의 성장은 그만큼 내게 큰 위로로 다가왔다. ‘나는 쓸모없지 않다. 나는 조금 더디게 뿌리내리는 것뿐이다. 지금 날 흔드는 비바람만 잘 견디면 꽃을 피우게 될 거다.’ 그렇게 날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이제 고구마는 땅 속 깊은 곳에서 말없이 열매를 빚고 있다. 아마 열매를 품에 안기까진 또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다. 다른 집 밭보다 훨 늦게 수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이상 초조하거나 불안하지 않다. 당장은 보이지 않더라도 결국 옹골찬 열매를 품게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열매가 열리는 기다림의 시간이 저마다 다를 뿐이다. 마치 우리들처럼, 그저 저마다의 시간이 다른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