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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유기 Jun 25. 2024

나에게 다가오지 마세요

난생처음 겪어보는 증상이었다. 출근할 때까지만 해도 분명 목 주변이 살짝 간지러운 정도였는데 점차 목을 조르듯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황급히 셔츠 맨 위 단추를 풀었다. 사무실 모니터 화면에 불그스름한 발진으로 뒤덮인 내 모습이 비쳤다. 목에서 시작된 발진은 차츰 더 부어오르며 발목까지 퍼져가고 있었다. 업무를 대충 마무리 짓고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짐을 챙겨 나올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전염되는 증상일까 싶어 회사 동료와의 점심 약속도 취소한 채 병원으로 달려갔다.


“접촉성 피부염이네요. 몸에 닿는 모든 건 다 조심하셔야 해요. 당분간은 옷, 침구, 수건 전부 청결한 걸로 자주 갈아 쓰시고 증상이 심하니까 화장실 휴지도 신경 쓰세요.”

대체 뭘 접촉하면 이렇게까지 증상이 나타나는 거냐 물었지만 의사의 대답은 시원찮았다. 염증의 원인이 워낙 다양해서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말뿐이었다. 결국 난 미지의 무언가와 살갗 좀 스쳤다고 온몸에 발진을 뒤집어쓴 사람이 되었다. 몸과 닿는 모든 걸 주의하려니 매사에 날카로워졌다. 세상이 온통 바이러스로 보였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타인의 옷깃, 숨결 한 번만 스쳐도 화가 치솟았다. 사실 역정을 내도 상관없지 않은가. 수많은 이들이 오가는 대중교통 안에서 어쩌다 한번 마주친 사이다. 회사에서처럼 매일 부대끼는 관계가 아니니 예의 차릴 필요 따윈 없다. 하차벨이 울리지 않았다면 소리를 꽥 질렀을지도 모른다.


겨우 집으로 돌아와 맨바닥에 털썩 드러누웠다. 전신이 가렵고 따가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데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던 동료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오전 내내 같이 갈 맛집 찾고 있었다며 갑자기 약속을 취소해서 서운하다는 내용이 도배되어 있었다. 나를 ‘좋은’ 사이라 생각했는데 자신과의 약속을 소중히 하지 않는 모습이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그 말이 마음에 스치자 뒷덜미가 더 부어오르는 기분이었다. 점심도 먹지 못하고 병원에 온 나는 안중에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벌겋게 부푼 손으로 구구절절 사과의 답신을 보냈다. 내 상태가 괜찮은지 묻는 말은 한 문장도 없었지만 서운한 상대방을 달래주는 게 우선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나는 ‘좋은 사람’이어야 하니까.


겨우 숨 좀 돌리려니 이번엔 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병원에 가기 전 대충 마무리 지은 업무와 관련한 얘기였다. 그는 내가 궁금할 겨를이 없었다. 아픈 건 알지만 자료를 얼른 더 보강해 달라고 했다. 일을 대신할 다른 팀원들이 있긴 해도 내가 ‘좋은’ 사람이니까 믿고 부탁하는 거란 말도 덧붙였다. 일 시키기 좋은 사람이란 뜻이 아닌가 싶었지만 따질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다. 가렵다 못해 무감각해진 몸뚱이를 일으켜 기어이 노트북 앞에 앉았다. 얼마나 아픈 건지 걱정하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지만 부장의 일을 도와주는 게 당연했다. 나는 ‘좋은 직장인’이어야 하니까.


노트북 모니터에 반사된 내 모습은 벌집 속을 맨몸으로 헤집고 나온 듯했다. 울긋불긋 울퉁불퉁 일그러져 있었다. 갑자기 스스로가 안쓰럽단 생각이 들었다. 버스 안에선 옷깃만 스쳐도 도끼눈을 떴으면서 회사 사람들에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육체가 나약한 껍데기를 걸친 탓에 정신까지 쓸데없는 걱정에 시달리는 탓이다. ‘사무실에서 매일 마주해야 하는데 내가 싫은 소리를 하면 회사에 나쁜 소문이 퍼지지 않을까?’‘평판 망가지면 이직하기도 힘들 테니 밥벌이하려면 그냥 참아야겠지?’

낯선 이에게 치켜세우던 발톱은 사회적 자아의 합리화에 속절없이 문드러졌다. 지금 나는 몸에 닿는 것만 조심할 게 아니었다. 마음에 닿는 모든 관계부터 신경 써야 하는 거였다. 더 이상 일그러지지 않도록 나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사회생활의 복잡다단한 인간관계는 늘 어려운 숙제다. ‘좋은 사람’이란 핑계에 갇혀 거절이 버거운 상태라면 더 그렇다. 다른 사람이 원하는 모습만 보여주려 하니 나의 진심은 뒷전이다. 싫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해 점차 주변에 휘둘리고 상처받는 악순환에 빠진다. 그렇다고 일로 만난 관계를 끊어버리기도 어렵다. 결국 혼자 참고 견디는 불균형이 계속된다. 타인의 평가에 나를 맞추려 아등바등하는 사이 내 마음이 어떤지는 나조차도 살피지 않고 있었다.


한 번의 스침으로도 염증을 앓는 게 인간이다. 하물며 내 시간과 감정이 맞닿은 인연은 얼마나 큰 생채기를 낼지 가늠할 수도 없다. 마음속이 문드러져 가는데 ‘좋은 사람’이 다 무슨 소용인가.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지켜내야 한다. 거절도 하고 싫은 소리도 하면서 상처받은 자신을 내보여야 한다. 적절한 거리를 두고 지켜보면서 각자의 책임을 돌려주는 것이다. 나에겐 그런 용기가 필요했다.


처방받은 연고를 바르느라 걸치고 있던 옷가지들을 벗어버렸다. 붉게 얼룩진 내가 보인다. 잔뜩 때려 넣은 항생제 덕분인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내 마음을 마주한 덕분인지 한결 몸이 가벼워졌다. 지금보다 더한 따가움도 쓰라림도 견딜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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