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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식 Jul 07. 2023

창작으로 돈을 버는 방법

창작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요? 이거야말로 창작자에게 아마 가장 절실한 질문일 것입니다. 동시에 제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먹고 살만은 하니?” 이 질문에 대해 저는 늘 “아니요.”라고 대답합니다. 어디서 따박따박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후원해 주는 것도 아니고, 늘 판매가 되는 상태도 아니니까요. 단기 프로젝트가 많으면 좀 수월하고, 장기적인 일을 하거나 새로운 걸 준비할 땐 대출로 버틸 때도 있습니다. 불안정함은 그냥 창작자에게 전제 조건 같습니다. 그걸 감수하고 하는 것이죠. 이런 극단적인 차이가 좀 줄어들거나, 혹은 그 차이가 별로 상관없기를 목표하며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제 제 그림을 ‘팔 수 있다’는 최소한의 감각은 생긴 것 같습니다. 회사나 외주 일을 위한 그림이 아닌 저의 영감이 이끄는 대로 그린 그림을요. 처음엔 ‘이게 누가 살 만한 가치가 있나?’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들고 행사에도 나가고 SNS에도 올리니까… 팔리더군요? 파는 건 내걸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놓으면 되는 거였고, 한번 팔게 되면 거기에 걸맞은 행동이 나오는 거였습니다.



관객들도 제 그림을 사갔고, 서서히 클라이언트도 제게 연락해 왔습니다. 한 출판사에서 정중한 첫 의뢰 메일을 받았을 땐 너무 벙벙하고 기뻤습니다. 처음으로 ‘내 그림’으로 일이 들어온 거였죠. 개인 창작자로서 저의 커리어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간 중간 다리 없는 판매자-구매자의 직접적인 관계를 경험하다 보니 감도 좀 잡혔고, 판다는 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판다’는 말이 좀 부박하게 느껴지지만, 저는 여기에 대해 오랜 시간 동안 복잡한 감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차라리 입에 많이 담으려고 합니다. 아무리 창작이 신성한 영역이라도, 파는 것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창작의 신성한 자기표현 영역, 그리고 팔리는 것은 둘 다 중요합니다. 그래야 창작자가 균형을 얻을 수 있고, 창작이 생명력을 얻을 수 있고, 더 높은 영역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열심히 만든 창작물이 안 팔리는 것만큼 씁쓸한 것도 없습니다. 자신보다 늦게 시작한 다른 후발 주자들이 시장에 빨리 진입해서 돈도 벌고 유명해지는 걸 보는 것도 그렇죠. 돈을 번다는 건 ‘반응을 얻는다’, ‘영향력을 갖는다'는 것과도 비슷한 말이니까요.



하지만 ‘팔리는 걸 해라’란 말은 그냥 잘 되는 것을 무작정 따라가라는 말과 동일하게 취급되기도 합니다. 창작자들끼리 하는 자조적인 농담 중에 ‘팔리려면 고양이랑 소녀를 그려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저도 그 말을 하곤 했지만 거기엔 시장을 깔보는 감정이 일부 있었습니다. 팔리는 작가가 되려면 작품성 있는 것보다 뻔하고 대중적인 것을 그려야 된다는 거죠. 거기 진실이 아예 없다고는 볼 수 없지만, 나의 왜곡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일단 아무나 ‘고양이와 소녀’를 해서 잘 되는 것도 아니었고, 내 것이 안 팔린다고 해서 시장이 다양성을 완전히 수용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팔리는 걸 한다'는 말은 흔히 시장을 따른다는 말로 받아들여지지만, 분명 시장을 따라오게 하면서 파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파는 것에도 여러 수준이 있어서, 그냥 ‘파는 것’과, ‘제대로 파는 것’은 다릅니다. 그래서 '판다'는 것에 대해 오해를 풀고 그게 뭔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판다는 것은 뭘까요? 어떻게 하면 내가 창작한 걸 팔아서 돈을 벌 수 있을까요?  원론적으로 얘기하자면, 무언가를 팔려면 ‘남의 필요를 채워주면’ 됩니다. 시장에서 모든 거래는 내 필요와 다른 사람의 필요가 만남으로서 일어납니다. 단순하게는 이것이 전부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미래에 시장 지형이 바뀐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팔린다는 건 누군가의 필요와 맞닿는 지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필요에 돈이 따라오는 거죠. 더 높은 수준의 필요를 채우거나, 더 다수의 필요를 채워줄수록 더 많이 팔리고 더 많은 돈을 벌게 될 것입니다. 창작도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특정한 정서, 기억, 태도, 인간관, 감정, 지성과 관련된 좀 더 미묘한 필요와 관련된 거라는 게 다를 뿐입니다.





그런데 저 같은 창작자는 ‘좋은 작품’을 하는데만 관심이 치중되어 있습니다. 좋은 작품을 하면 팔릴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기도 하고요. 당연히 창작자의 초점은 창작물의 내적 완성도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구매자의 필요와 맞닿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창작자가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 안타깝게도 관객에겐 필요하지도, 관심이 가지도 않는 것이죠. 팔리는 경우라도 사람들이 창작자가 주길 원하는 부분이 아닌, 다른 것을 더 필요로 할 수도 있습니다. (창작자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는데, 장식성에만 주목을 받는 등) 이걸 조율해 나가는 게 창작의 과업 중 하나일 것입니다.






창작은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필요할까요? 한번 예시를 만들어 봤습니다.



-이 작가의 그림 속 인물은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잘 그려졌다. 이걸 지니는 것만으로 나도 아름다워진 것 같다. 힙하고 유명하고 문화, 기술을 선도하고 있어서 나도 그 일원이 된 것 같다. (아름다움, 테크닉이 주는 쾌감, 힙함, 유명함, 트렌디함)  


-이 작품의 컬러와 이야기는 잊고 있던 어떤 기억, 감정, 거기서 오는 설렘을 상기시키고 언제든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게 해 준다. 이 작품을 소유함으로써 이런 감성을 자주 느끼고 확인하고 싶다. (감성, 감정, 공감대, 기억)


-이 작품은 동시대적 경험을 창조적이고 혁신적으로 시각화해서 어떤 새로운 충격을 준다. 이 작품을 감상하는 것으로 나도 동시대성에 깨어있고 혁신적 변화에 동참하는 사람이 된다. (혁신성, 창조성, 동시대적 감각)


-이 작가는 인간에게 뭔가 아주 보편적이고 중요한 것을 건드리고 있다. 이건 역사에 남을 것 같다. 소유하고 있으면 내 안목도 증명하고 투자의 가치도 있을 것 같다. (보편성, 앎, 역사적 가치, 투자 가치)  






간단하게 적었지만 사람들의 필요는 아마도 이보다 훨씬 미묘하고 다양할 것입니다. 이런 것을 토대로, 자신의 창작물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필요한지 흐릿하게나마 느껴볼 수 있겠죠. 혹은 누군가의 피드백으로 알 수도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감사하게도 관객분이나 클라이언트가 왜 내 그림을 선택했는지 언급해 주시는 경우가 있었는데, 무표정한 인물들의 중립성, 아젠다 없음, 색상의 강렬함, 이런 것에서 비롯되더군요. 아마도 그런 것들이 주는 어떤 태도와 정서가 사람들과 제가 만나는 접점이 아닐까 합니다. 제 클라이언트는 그게 필요해서 많은 작가들 사이에서 굳이 제게 연락을 한 것이겠죠. 대중적으로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것이 필요한 부분이 어딘가 존재합니다.



그 필요가 무엇이냐에 따라 자신의 시장은 작을 수도 있고, 클 수도 있습니다. 혹은 경쟁자가 많거나 적을 수도 있죠. 고양이와 소녀 그림이 쉽지 않은 이유는, 시장은 크지만 경쟁자는 많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경제 논리로 보면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쟁자 사이에서 독보적인 역량을 갖추거나, 아니면 하나의 작은 시장을 독점하면 됩니다. 제 경우는 후자 쪽에 가깝겠죠. 저와 비슷한 걸 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요.



물론 창작은 이런 일반적인 시장 논리로 모든 것을 재단하기엔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것들이 많습니다. 이런 비즈니스 전략이 오히려 창작의 본질을 훼손하는 경우도 있을 거고요. 그래서 저도 '내 것에 집중하되 이러한 부분에 대해 아는 게 필요하고, 그래서 가끔씩 곁눈질로 의식할 수 있는 정도'로 생각하면서 균형을 맞추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필요를 알았고 그 필요가 자신과 잘 맞는다면, 이후에 할 일은 이 부분을 공략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이 그 접점인 작가라면 그 아름다움이 뭔지에 대해 더 탐구할 수 있어야 하고, 이에 대해 공부하고 책을 읽고 경험하면서 '아름다움'에 대한 전문가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비슷한 부류의 작가들 사이에서 자신이 어떤 맥락을 갖는지 알아낼 수도 있겠죠. 그걸 다시 연료로 해서 작업을 이어나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자신의 말이나 글, 행동, 이력을 통해 아름다움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설득할 수도 있겠죠. 자신의 영역에 초점을 맞추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이 그 작품뿐 아니라 그 작가의 삶을 통해 그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무엇이었는지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작가는 사람들에게 더 높은 수준의 필요를 채워줄 것이고, 더 많은 사람이 찾게 되는 작가가 될 것입니다.



그게 가치입니다. 가치가 올라가면 돈은 당연히 많이 벌게 될 것입니다. 돈이라는 건 가치가 물성화되는 것이라고 해요. (물론 우리가 보는 많은 것은 여기에 속임수와 과장이 들어간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그것도 엄연히 따지면 하나의 단기적 가치라고 볼 수 있겠죠.)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창작이 자기 표현을 넘어 ‘팔릴 수 있는 것’이 되려면...



-내 창작물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부분에서 필요한지 인식하는 것

-그 필요를 공략하는 것. 여기에 대해 깊어지고 더 설득할 수 있게 되어서 가치를 높이는 것



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제대로 파는' 방법입니다. <창작으로 돈 벌기 ABC> 이런 게 있으면 좋겠지만 정말 오래 단단하게 이 일을 하려면 느리지만 확실하게 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제대로 판다는 건 팔리는 방법을 따라서 그걸 쫓아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으로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하고, 그만한 돈이 따라오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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